55년간 쓴 '현대사 일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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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자료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55년 동안 써온 일기 98권을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박래욱(68.사진)씨의 소망이다.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써왔다. 97년 한국기네스에서 '일기 최장 보유자'로 인증받았다. 그는 현재 서울 자양동에서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민족분단.한국전쟁.군사독재.산업화 등 우리 사회의 격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후학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바가 없습니다."

박씨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데는 어머니의 권유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남자가 열 살이 되면 인생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하셨어요. 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때까지 썼던 일기는 불타 없어졌습니다. 12세 나이의 제가 인민군의 잔혹한 행위를 적어 놓은 일기를 경찰관의 아내였던 어머니께서 소각하셨던 거죠. 이번에 기증하는 것은 52년부터 다시 써온 것들입니다."

56년 당시 돼지고기 반근 100환, 이발비 60환, 영화관람료 30환, 필름 400환, 신문대금 300환, 성냥 10환 등 당시 경제 상황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씨는 이번에 금전출납부(61~2003년) 10권, 한약처방전(71~2001년) 16권, 전남도민증(62년), 국민병역신고증(61년), 인감증명원(65년), 각종 예금통장과 상품영수증 등도 함께 기증했다. 하나 하나가 '20세기 생활사 박물관'자료들 같다.

"작은 것 하나라도 모으는 게 천성이 됐어요. 누가 잘 정리하면 훌륭한 이야기 거리도 될 것같습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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