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머리 크면 지능 높다 … 수돗물보다 생수가 낫다 … 우유는 필수 식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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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불량의학

원제 Bad Medicine

크리스토퍼 완제크 지음, 박은영 옮김

열대림, 392쪽, 1만5000원

다음 의학 상식 중 맞는 것을 골라보자. 1. 머리가 큰 아이는 뇌 용량이 큰 것이기 때문에 머리가 작은 아이보다 지능이 높다. 2. 세균은 모든 병의 온상이므로 늘 항균비누로 손을 닦는 것이 좋다. 3. 염소와 불소가 들어있는 수돗물보다 생수를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 4. '완전식품'인 우유는 칼슘 섭취를 위한 필수 식품이다.

미안하지만, 정답은 없다. 어? 하고 갸웃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네 가지 모두 우리의 일상에서 어느 정도 '상식'으로 통하는 내용 아닌가. 워싱턴 포스트의 건강.의학 분야 필자로 활동 중인 지은이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의학이나 과학 정보가 얼마나 '불량'했는지를 자근자근 씹는다. 도마 위에 오른 '불량의학'으로는 탄수화물의 섭취를 전면차단하고 고기만 먹는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부터 유기농, 건강보조식품, 생수와 항산화제 등 다양하다. 아로마테라피와 허브요법, 자기요법 등 대체의학은 물론, 청각보호장구 하나 없이 기관총 같은 중화기를 연신 쏘아대고도 청력 손실을 별로 겪지 않는 람보와 같은 할리우드의 비현실적 묘사도 지은이의 예봉을 피해갈 수 없다.

자, 그럼 지은이의 고발을 일부 들어보자. 머리 큰 아이를 둔 부모들은 크게 실망할지 모르지만, 뇌의 크기는 지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가 작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천재의 대명사 아인슈타인의 뇌 크기도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우유가 콜라 같은 청량음료보다 영양 면에서 우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유는 칼슘 함량은 높지만 흡수율은 그저 그렇다. 굳이 소화장애를 겪으면서까지 마실 필요가 없다. 대신 브로콜리나 케일 등을 먹으면 된다.

지은이는 이같은 잘못된 상식이 유포된 책임을 일차적으로 어제의 실험 결과를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버리는 무책임한 과학 필자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광고문구에 이용하는 기업들, '아카데미상 수상자는 성취감이 높기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한 배우들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식의 '믿거나 말거나'식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 등에 묻는다. 물론 이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인 '불량'대중도 더이상 피해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 특히 소득 수준과 학력이 높거나, 선진국 국민일수록 어떤 과학적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각종 대체의학 요법을 '웰빙'의 상징인 양 떠받든다는 지적은 가슴 뜨끔하다.

결론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정보 홍수 속에서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곤 하는 내용으로 맺어진다.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있냐가 아니라 함량이 얼마인가가 문제"라든가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책은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과 같은 기본 원칙을 수다한 근거와 사례를 들어가며 설득력있게 풀어낸 점이 뛰어나다. 곳곳에 포진한 지은이 특유의 다소 빈정대는 듯 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입담 덕분에 시종일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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