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배달원에 10년째 "감사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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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밑이 다가오면 이춘호씨(52·주부·서울 노원구. 상계동434의 62)의 마음은 설렌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소외 직업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소중한 기회인 때문이다.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르게 소리 없이 찾아와 쓰레기통을 말끔히 치워놓는 청소원, 궁금한 이들의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우편배달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짐없이 신문을 배달하는 배달소년, 이들이 바로 그가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올해는 쇠고기 두근씩을 선물로 준비했어요. 예년에는 모자나 양말·장갑 등을 선물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댁 식탁에 불고기 요리가 한번 푸짐하게 올랐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선물 종류를 바꿔봤지요.』
대한주부클럽연합회가 68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벌이고있는 「소외직업인에게 감사 선물 전하기 운동」에 이씨가 동참한 것은 주부클립회원으로 가입한 80년부터. 그후 10년간 그는 이웃들과 사랑나누기를 변함없이 계속했다.
『신문배달소년·우체부아저씨 ·청소원 아저씨들께 알립니다. 선물이 우리 집에 마련되어 있으니 들러가세요』란 글귀가 인쇄된 분홍 종이 표지를 대문 양쪽에 붙여두고 초인종이 울리기를 고대하고 있다가 이들이 찾아오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준비한 선물을 전하는 것이 요즘 그의 일.
대문 안으로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초인종이 울리지 않으면 현관문을 열고 목청 높여 배달소년을 불러댈 정도로 그의「감사 정 나누기」는 빈틈이 없다.
『조그만 성의인데도 받는 이들이 너무 고마워하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 흐뭇하면서도 푸짐한 선물이 못돼 죄송한 마음을 갖는다』는 그는 이 운동에 동참하는 이웃들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권해 보지만 선뜻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없어요. 자기 가정에서 조금 덜 먹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면 자신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그는 우리사회가 삭막해져 가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웃간에 작은사랑을 나누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를 편다.
평소에도 신문배달원에게 자녀(1남1녀)들의 작아진 옷가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단칸 셋방에서 아들내외·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할머니(82)를 사나흘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싸들고 찾아가 보는 일들은 그가 실천하고 있는 이웃간 사랑 나누기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독신으로 살면서 일생동안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처녀 때 꿈이었다』는 이씨는 처음에는 먹을 것이 줄어든다고 투정부리던 자녀들마저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된 것을 지난 10년간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올 겨울에는 추위에 떠는 이웃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이씨는 파출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병든 사촌언니(62)를 간병하는 이웃 부인을 위해 시어머니(88)와 함께 작아서 못 입게 된 옷들을 바쁘게 챙기고 있다.
이씨는 부군 최성식씨(53·공무원)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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