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내 탓이오」운동 박정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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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 탓이오.」
이 한마디 말은 올해 종교계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함축성을 지니고있다.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회장 박정훈)가 지난 9월말 우리사회 윤리·도덕의 타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개혁의 정신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것이 「내 탓이오」였다.
스티커 30만장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시작된「내 탓이 오」운동은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었다. 천주교 내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감대가 생겨났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이렇게 살벌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한탄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와 그에 따른 윤리·도덕의 타락이 심각합니다. 이념의 벽·지역감정·노사문제·세대격차 등으로 진통을 겪고있지요. 이러한 일들은 문제의 원인을 모두 남의 탓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자는 생각을 각자가 갖지 않는데서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에서 나온 「내 탓이오」를 앞세워 우리 모두가 사회를 고쳐나가자고 한 것이지요.』
올해는 도덕과 양심의 회복·갈등의 해소를 종교가 앞장서 이루어내야 한다는 인식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종교인들 사이에 넓게 자리잡은 해다.
신앙 속에서 자기 구원을 이루는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대응해야겠다는 종교인들의 생각은 지나친 과소비풍조, 인륜을 해치는 흉악 범죄의 접종 등이 더 이상 방치할 단계가 아니라는 위기감과 종교적 사명감을 불러 일으켰다.
종교인수가 전체인구의 절반을 넘는데도 사회가 이렇게 살벌하고 혼탁할 수밖에 없다면 종교가 과연 무슨 역할을 해내고 있는가 하는 질책도 있었다. 잘못된 교육에 의해 인성이 이렇게 나빠져 있다면 종교라도 나서 도덕과 양심의 회복을 종교역량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천주교의 「내 탓이오」운동 이외에도 여러 종교에서 윤리·도덕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했다.
불교 조계종은 자비에 기초한 삶, 절제의 자세 갖추기 등을 촉구했다. 전국의 사찰에서 법회 때마다 이를 강조하는 법문을 했다. 태고종도 새 생활운동을 펼쳤다.
개신교에서는 충현교회가 앞장서 절제운동을 폈다. 지나친 과소비를 막자, 자기욕구충족을 억제하자는 뜻으로 지난 6월 시작한 이 운동에 전국의 많은 교회가 호응했다.
나눔의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서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도 개신교 전체가 함께 한 것이었다.
대한YWCA연합회의 바른 삶 실천운동, 대한불교청년회의 청소년선도노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종교인들이 이 같은 운동에 나섰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교회·성당·법당에서 사랑의 정신, 자비의 정신이 이야기되면서도 실사회에 나가서는 그 같은 정신이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심각한 반성을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그 정신을 살려 나갈 길을 찾아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의 잘못까지 「내 탓이오」라고 하는 자세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는 것, 그것까지도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데에 이 운동의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부·사회의 온갖 비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고 고쳐 나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박정훈 회장의 이 같은 말처럼 「내 탓이오」뿐만 아니라 올해 종교계의 여러 운동이 적극적인 대 사회적 비판의기조 위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선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악을 비판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종교계는 이 같은 종교의 여러 움직임을 개별종교단위로 벌일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함께 추진해 보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한 연합조직이 같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회단체와의 연대 속에 계획되고 있다.
단순한 캐치프레이즈의 제시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는 치밀함도 보이고 있다. 「내 탓이오」운동을 벌이는 천주교 사도직 협의회는 국민학교 학생까지도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l백원을 내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전국회원제를 구상하고있다. 회원가입과 함께 앙케트에 응답하여 「내 탓이오」운동에 대한 의견과 추진방법에 대해 지혜를 모은다.
불교에서도 절제·자비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행동을 가시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있다.
종교계는 올해 통일에 대한 노력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2월 스위스 글리온 남북기독교인모임에서 남북교인들의 서울·평양에서의 만남, 통일을 위한 기도회에서의 통일의지 강조 등을 합의했다. 불교도 남북교류에 대한 제의를 내고 미국에서의 남북 불자간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천도교에서도 남북교류를 제안하고 있다.
개신교 계는 그 동안 축적된 힘으로 해외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필리핀 세계선교대회에 1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했다. 또 소련·동구·중국 등에 성경 보내기 운동도 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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