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요즘 바이오 키워드…그래서 주목받는 레고켐·루닛

  • 카드 발행 일시2023.11.01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

금리 인상기 성장주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성장주의 대표 격인 바이오도 예외는 아니죠. 특히 소형 바이오테크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큽니다. 물가 상승 등 연구개발(R&D)비 증가는 자금 소진을 앞당기는데 조달은 쉽지 않으니 현금 흐름이 나빠질 수밖에 없죠. 치솟던 기준금리도 이제 곧 정점을 찍을 텐데요. 금리가 방향을 튼다면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투자자의 무관심과 높은 금리에도 바이오의 펀더멘털인 첨단 치료 물질의 임상 진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기술 수출에 성공하거나 약물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기업도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지나친 기대가 거품을 만든 것처럼 펀더멘털을 외면한 무관심은 반대로 좋은 투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은 바이오의 시간이 오기 전, 함께 공부하자는 뜻에서 준비한 콘텐트입니다. 바이오 공부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핵심 키워드와 글로벌 트렌드를 짚어보고, 국내 기업의 R&D 현황까지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은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와 함께하는데요. 대형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에서 펀드를 운용했던 이 대표는 최근 바이오 전도사로 변신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⑬ 바이오의 시간

올해는 유난히 제약∙바이오 이슈가 세간에 자주 오르내렸다. 업계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관심을 가질 법한 소식이 많았는데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 열풍이 대표적이다. 위고비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였지만 확실한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너도나도 찾기 시작했다. 추격자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마운자로(Mounjaro)도 머지않아 공식적으로 등판한다. 100조원도 넘을 거라는 비만 관리 시장의 본격적인 개막이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 로이터=연합뉴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 로이터=연합뉴스

인류를 괴롭히는 최악의 질병 중 하나인 알츠하이머병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지난 7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Leqembi)’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는데 임상에서 병의 진행을 늦춘다는 걸 확인했다. 물론 경증 단계에서만 쓸 수 있고, 가격은 비싸고, 부작용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희망의 문을 연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공개된 ‘캔서문샷(Cancer Moonshot)’ 참여 기업 리스트도 내내 화젯거리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Moon Shot)에서 이름을 따온 캔서문샷은 바이든 미 정부가 추진하는 암 정복 프로젝트다. 향후 25년간 암 사망률을 지금의 50%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연간 18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입하는 프로젝트다. 루닛을 비롯한 일부 국내 바이오테크가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커털린 커리코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수상 자체는 유례없이 빠른 백신 개발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하지만 mRNA는 암과의 전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다. 얼마 전 바이오엔테크는 mRNA 기반 암 백신 CARVac의 첫 임상 결과를 공개했는데, 종양이 성장을 멈추거나 줄어드는 걸 확인했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소식이 많았지만, 주가 흐름은 그렇지 않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오 종목으로 구성된 KRX 바이오 K-뉴딜지수는 최근 1년 새 15.4% 하락했다. 구성 종목 대부분의 주가가 부진했는데 비중이 가장 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기간 주가가 90만원대에 70만원 초반으로 밀렸다. 비소세포폐암 항체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로 기대를 모았던 유한양행 역시 임상 3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최근 주가가 급락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중심인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 상장지수펀드(ETF)인 헬스케어 셀렉트섹터 SPDR(XLV)은 최근 1년간 7.2% 하락했다. 같은 기간 S&P500과 나스닥이 각각 6.4%, 15.1% 상승한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성장주 투자의 아이콘인 캐시 우드가 이끄는 또 다른 바이오 ETF ARKG는 무려 34%나 하락했다. 상대적으로 주가 하락 폭이 컸던 중소형 바이오테크 비중이 컸던 탓이다.

사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바이오 주가는 상승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끝나면 반등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였는데 그 예측부터 틀렸다. 탄탄한 고용과 성장 앞에 미국의 연내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미국은 3분기에도 4.9%(전 분기 대비 연율)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내놨는데 제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늘었고, 소비 역시 탄탄했다.

미국 경제의 고공행진에 글로벌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에 다다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미 내년도 기준금리 전망 중간값을 연 4.6%에서 연 5.1%로 올렸다. 더 올릴 거란 의미다. 이 와중에 중동에선 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모든 상황이 고금리 장기화를 가리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돈이 풍족하면 시간도 당길 수 있다.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격언처럼 전해지는 말이다. 유동성이 풍부할 때 자신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상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 2022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고금리가 지속하고, 돈줄이 마르면 아무리 유망한 산업도 탄력을 얻기 힘들다. 특히 바이오산업에 금리는 혁신의 속도를 결정짓는 변속기와 같다. ‘바이오의 꽃’이라는 신약 개발 과정이 그만큼 험난하기 때문이다.
통상 1만 개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중 80개 정도만이 임상 단계에 진입한다. 그리고 그중 10분의 1만이 신약 승인의 전 단계인 3상에 진입한다. 도전을 거듭해 여기까지 도달해도 문제다.

임상 3상에선 수백∙수천 명의 다국가∙다기관 환자를 상대로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 약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천억원을 투입하는 일이 허다하다. 중소형 바이오테크는 엄두도 못 낼 일이고, 빅파마(대형 제약사)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체 해부 이미지. 픽사베이

인체 해부 이미지. 픽사베이

금융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며 조금만 버텨 보자던 바이오테크의 기다림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자금 사정이 한계에 다다른 중소형 바이오테크는 최후의 수단인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선 한 달에 2~3건 정도의 유상증자 발표가 나온다. 주주에게 힘든 결단을 요구한다는 건 그만큼 쪼들린다는 얘기다.

과거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가 이어진다면 바이오 투자자의 투자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너도나도 잘 될 리가 없으니 좀 더 까다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바이오 기술의 다양성과 넓은 범위는 투자자에게 커다란 장벽이다. 하지만 파편화한 지식만으로는 바이오의 숲을 볼 수 없다. 숲을 조망할 능력을 갖추려면 그 구성 요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 시리즈에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왔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