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없는데 공장부터 지었다…삼바의 기막힌 선택, CDMO

  • 카드 발행 일시2023.10.04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

금리 인상기 성장주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합니다. 성장주의 대표 격인 바이오도 예외는 아니죠. 특히 소형 바이오테크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큽니다. 물가 상승 등 연구개발(R&D)비 증가는 자금 소진을 앞당기는데 조달은 쉽지 않으니 현금 흐름이 나빠질 수밖에 없죠. 치솟던 기준금리도 이제 곧 정점을 찍을 텐데요. 금리가 방향을 튼다면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투자자의 무관심과 높은 금리에도 바이오의 펀더멘털인 첨단 치료 물질의 임상 진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요. 기술 수출에 성공하거나 약물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기업도 많아졌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지나친 기대가 거품을 만든 것처럼 펀더멘털을 외면한 무관심은 반대로 좋은 투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은 바이오의 시간이 오기 전, 함께 공부하자는 뜻에서 준비한 콘텐트입니다. 바이오 공부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핵심 키워드와 글로벌 트렌드를 짚어보고, 국내 기업의 R&D 현황까지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K-바이오 지도 by 머니랩]은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와 함께하는데요. 대형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에서 펀드를 운용했던 이 대표는 최근 바이오 전도사로 변신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⑨ 위탁개발생산(CDMO) 

반도체 업계엔 독특한 용어가 있다. ‘팹리스’다. 반도체 공장을 의미하는 ‘팹(Fab)’과 없다는 뜻인 ‘리스(less)’의 합성어다. 설계도를 그리는 회사와 제품(반도체)을 만드는 회사가 따로 있는 셈이다. 특성상 제조 공정을 갖추는 데 워낙 큰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퀄컴이나 엔비디아 등은 대표적으로 설계에 특화된 회사다. 이들의 주문을 받아 대신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게 파운드리(위탁생산), 여기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바로 TSMC다.

 대만 신추시 TSMC 본사 앞에 걸린 대만 국기가 이 회사 사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신추시 TSMC 본사 앞에 걸린 대만 국기가 이 회사 사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56.4%(2023년 2분기)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반도체 좀 만들어 달라고 넣는 주문의 절반 이상을 한 회사가 소화한다는 뜻이다. 설계대로 만들 능력이 있고, 약속을 잘 지키고, 가격도 적당하니 일을 맡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을 내세워 혹시 모를 기술 유출 걱정까지 덜어주니 이만한 을(乙)도 없다.

이쯤 되면 을의 파워가 어느 정도일지도 짐작할 만하다. 위탁받은 것이니 계약상으론 을이 분명하나, 어느 날 “당신네 회사 주문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 인공지능(AI)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TSMC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떠받드는 수퍼 갑(甲)이 된 이유다.

최근 들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위탁생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신약의 무게중심이 합성의약품에서 바이오의약품으로 이동하면서다.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합성의약품은 성분과 배합 방식만 정해지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생산 라인이 단순해 공장을 짓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덜 든다. 맡길 필요 없이 개발사가 직접 약을 만들어 공급하는 패턴이 주를 이뤘던 이유다.

인체에서 생성된 원료로 만드는 바이오의약품은 합성의약품과 비교해 독성이 적고 특정 질환에 대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게 강점이다. 하지만 비싸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항체치료제는 특정 항원에 대응해 생성된 항체가 다른 항원에 반응하지 않는 특징을 이용해 만든다. 세포를 배양한 뒤 불필요한 물질을 정제하는 게 제조의 시작인데 공정 내내 난이도가 있다. 살아 있는 재료를 다루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우수한 제조 시절을 갖춰야 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자체 생산 역량이 부족하거나 신약 연구개발(R&D)에 집중하려는 제약사가 바이오 위탁생산(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CMO)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나아가 시장은 위탁개발생산(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 CDMO)으로 진화하고 있다. CMO뿐만 아니라 후보 물질 개발, 임상시험, 상용화 준비 등 신약 개발 과정을 위탁하는 개념이다. 경험과 능력을 갖춘 CDMO 업체와 일종의 전략적 제휴를 맺는 셈이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 파마(Evaluate Pharm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3890억 달러(약 527조원)에 달한다. 전체 제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바이오의약품은 이후에도 연평균 10.1%의 성장세를 보이며 2030년엔 시장 규모가 올해의 두 배로 커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항체치료제가 중심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세포∙유전자 치료제의 비중이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