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NOW] "운동권 색깔을 숨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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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 마지막 날인 23일 학생회관 앞에 마련된 투표소를 학생들이 지나치고 있다. 서울대는 결국 투표율 미달로 연장투표에 들어갔다.박종근 기자

'등록금 5% 인하' '겨울 계절학기 도입' '필수 교양강의 확충' '계절학기 수업료 환불'….

21일 투표를 시작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운동권 후보들이 내건 주요 공약이다. 출마한 7개 선거운동본부(선본) 중 운동권 계열은 4곳. 이 중 3곳은 비운동권 후보들과 공약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하나같이 내세우는 게 '학내 복지 강화'다. 운동권 민중민주(PD) 계열 선본인 'ing'의 관계자는 "민중.민족 등을 내세우다간 학생들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할 것"이라며 "거대 담론을 피해 대학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선관위 어효성(21)씨는 "운동권 선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겉으로 학내 복지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마저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3일까지의 투표율은 32.49%로 반수를 넘지 못해 연장 투표에 들어갔다. 과반수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 구성이 내년으로 미뤄질지 모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 "운동권 색채를 숨겨라"=운동권이 자기 색깔을 숨기는 현상은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다. 선거 포스터에서 '민중' '통일' 등의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16일 선거운동에 들어간 경희대에선 운동권 두 곳(NL 계열)과 비운동권 한 곳의 공약 차이가 별로 없다. 운동권의 한 후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애틀 원정단으로 미국을 다녀왔을 정도로 '열성파'다. 하지만 공개적으론 "운동권.비운동권으로 구분하지 말고 정책선거를 하자"고 유세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한 팀씩 경합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올 1학기 내내 이어진 본관 점거와 8.15 민족대축전 교내 유치 등으로 학생회에 대한 학내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과학과 3학년 김민욱(24)씨는 "누가 총학생회장이 되든 학생들을 위해 뭔가 해줄 것이란 기대는 없다"며 "조용히 일하는 이들이 당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에선 출마한 세 후보 중 둘이 운동권 성향이지만 올 4월 교수 억류 사태로 인한 운동권 출교(黜校) 사태나 북핵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서울대처럼 투표 마감일인 23일까지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연장 투표에 들어갔다. 동국대처럼 운동권이 아예 출마를 포기한 대학도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명규 교수는 "대학 총학생회 선거도 기성 정치권처럼 득표에 유리한 공약만 내세우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학 학생회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근영.권호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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