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수증기 퍼다 올린다…서울 역대급 '9월 더위' 뜻밖 주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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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이어진 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시민이 손선풍기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늦더위가 이어진 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한 시민이 손선풍기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5일 서울이 기상 관측 이래 역대 가장 높은 9월 평균기온을 기록하는 등 가을에 접어들었는데도 더위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6일에도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5일 서울의 평균기온은 28.5도로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116년 만에 가장 높은 9월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기존 기록은 1935년 9월 8일의 28.2도였다. 강원 춘천과 경기 동두천도 각각 26.7도와 26.4도로 9월 평균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앞서 서울과 인천 등 전국 곳곳에는 전날 밤부터 이례적인 가을 열대야가 나타나기도 했다. 열대야란 전날 오후 6시 1분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에서 9월에 열대야가 나타난 건 1935년 이후 88년 만이다.

6일에도 서울의 한낮 기온이 평년보다 4도 이상 높은 32.1도를 기록하는 등 폭염 수준의 더위가 이어졌다. 서울 일부 지역을 포함해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는 폭염 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태풍 기러기가 남긴 수증기, 습한 더위 불러

5일 저녁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일대에 더위를 달래주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위). 하지만 이날 저녁 비가 내리지 않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강바람으로 더위를 달래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

5일 저녁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일대에 더위를 달래주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위). 하지만 이날 저녁 비가 내리지 않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강바람으로 더위를 달래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

서울의 평균 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았던 건 따뜻한 동풍이 불어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기온이 높아진 데다가, 낮 동안에 오른 기온이 밤사이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유입된 수증기로 인해 습도가 올라가고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서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은 것이다. 습한 공기는 건조한 공기보다 비열(어떤 물질 1g의 온도를 1℃만큼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이 크기 때문에 열이 더 천천히 식는다.

서울 일부 지역에 시간당 30㎜ 안팎의 강한 소나기가 쏟아진 것도 대기 중에 수증기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열대야가 발생하려면 남쪽에서 들어오는 굉장히 많은 수증기가 전제돼야 한다”며 “12호 태풍 기러기가 저기압 소용돌이로 변질된 채로 일본 규슈 남쪽까지 오면서 마치 난로처럼 한반도로 따뜻한 수증기를 퍼다 올리는 수증기 공급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주말까지 30도 웃도는 더위 이어질 듯 

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 앞에 설치된 쿨링포그 아래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 앞에 설치된 쿨링포그 아래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폭염 수준의 무더위는 7일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7일 서울의 한낮 기온은 31도까지 오르겠고, 전국적으로 30도 안팎의 높은 기온이 유지될 전망이다. 이번 주말까지도 전국의 기온이 평년 기온을 훌쩍 웃도는 등 더위의 기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당분간 동풍이 유입되면서 낮 기온이 중부지방과 전라권, 경상 서부를 중심으로 30도 이상 오르는 곳이 많겠다”며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역에서는 습도가 높아 체감온도가 33도 내외로 올라 무덥겠으니 더위에 유의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 통보관은 “수증기가 동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일교차가 커지고, 밤에 꿉꿉한 느낌은 덜 해질 것”이라면서도 “일요일을 전후로 남쪽에서 저기압 소용돌이가 올라오면서 습도가 높은 무더운 날씨가 또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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