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화합 깨는 골프장 건설/정재헌 특집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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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골프장이 또다시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호재로 등장,도마위에 올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골프장건설의 문제점은 주로 산림훼손과 농약으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집약된다.
물론 이런점도 직접피해를 보게되는 인근주민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는 있지만 현장주민들을 만나보면 드러나지 않는 또다른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된다.
골프장이 건설되기 전에는 마을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면서 유지해오던 전형적인 부락공동체가 골프장이 들어섬으로써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주민들끼리 모여 건설저지대책이라도 의논할라치면 어김없이 주동자(?)들을 돈과 술로 매수,이런 사실이 마을에 퍼짐으로 해서 주민들간에 반목이 조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땅을 높은 값에 판 사람,헐값에 판 사람,땅이 없어 한평도 못판 사람 등으로 나누어지면서 위화감마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마을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면서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로 변해버린다.
마을의 연장자들은 또 골프장이 완공되면 혹시 그나마 몇 안되는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고급승용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 드나드는 광경을 보면서 땡볕에서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논밭을 매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는 일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한 골프장 인근 마을은 개장초에 약 2백가구가 살았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50가구도 채 남지않았다고 한다.
『나는 골프장이 축구장만한걸로 알았어요.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60만∼70만평의 산들이 파헤쳐지는 것을 보고는 선산 판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도 예전같지가 않습니다. 관이나 사업주들은 골프장이 들어서면 마을이 개발돼 살기가 좋아진다고 했습니다만 골프장이 들어서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금 사는 정도보다 나빠지기야 하겠습니까.』 충북 진천의 한 골프장건설 현장주민의 얘기다.
이제 국민들이 달콤한 개발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정부나 개발론자들은 눈여겨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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