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뮤추얼펀드 난타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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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뮤추얼펀드 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돼 온 관행적 부정거래에 대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검찰의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으며,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윌리엄 도널드슨 SEC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의회 연설에서 뮤추얼펀드 업계의 불공정 거래가 예상보다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했다.

2일엔 스트롱펀드의 설립자 겸 회장인 리처드 스트롱(61)이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SEC가 그의 부당거래 연루 혐의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1974년 설립된 스트롱펀드는 현재 4백20억달러를 굴리는 대형 펀드다.

지난 주말엔 매사추세츠주 검찰과 SEC가 미국 5위의 펀드회사인 푸트남과 이 회사의 펀드매니저 두 명을 시차 이용(market timing)거래와 마감 후 거래(late trading) 혐의로 제소했다고 발표했다.

SEC는 푸트남의 또 다른 펀드매니저 6명이 98년부터 불법 거래를 통해 약 1백만달러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펀드 업계에 만연된 것으로 알려진 '마감 후 거래'란 펀드 주식을 주식시장이 끝난 오후 4시 이후에 그날 종가로 매입하는 것을 말한다. 장 마감 후 대형 호재가 발표된 주식을 많이 편입하고 있는 펀드 주식을 그날 종가로 사면 다음날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거래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시차 이용 거래'란 각국의 증시 개장시간이 다른 점을 이용한 것으로 불법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펀드 회사가 약관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펀드 운용사들은 헤지펀드 등 특정 고객들에게만 시차를 이용한 단기매매를 몰래 허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뮤추얼펀드 비리는 지난 9월 3일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이 헤지펀드인 카나리캐피털이 야누스 등 네 개의 뮤추얼펀드회사와 결탁, 대규모 부당거래를 해왔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이후 이 비리에 연루된 펀드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자들의 소송이 줄을 이었다.

미국 증권업협회(NASD)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뮤추얼펀드와 관련한 소송이 1천3백99건으로 지난해(1천2백49건)와 2001년(5백43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SEC가 지난 2개월간 88개 뮤추얼펀드를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불법 또는 부당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불법 거래와 관련된 임직원들이 줄줄이 업계를 떠났으며 일부는 형사소추까지 당하고 있다.

뮤추얼펀드 중 최대 상장사인 얼라이언스 캐피털은 시차 이용 거래를 한두 명의 펀드매니저에 대해 정직조치를 내렸으며 뱅크원은 부정거래의 책임을 물어 임원 두 명을 해고했다. 메릴린치는 브로커 세 명을, 시티그룹의 스미스바니는 브로커 네 명을 쫓아냈다.

고객들은 신뢰를 잃어버린 펀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다. 야누스 캐피털에서는 지난 9월 한달 동안 27억달러가 순유출됐다. 매사추세츠주는 푸트남에 위탁했던 17억달러의 연금펀드 운용계약을 취소했으며, 뉴욕주 교원퇴직기금도 최근 푸트남과의 거래를 끊기로 결정했다. 월가의 뮤추얼펀드 관계자들은 앞으로 많은 변화가 업계에 닥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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