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후분양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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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는 "정부가 국민을 또 속이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후분양제 시행을 발표한 서울시도 정부의 후분양제 재검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후분양제 논란 확산=재정경제부 노대래 정책조정국장은 22일 한 라디오에서 "주택 공급 로드맵(후분양제 로드맵) 작성 시점과 현재의 상황은 많이 변했다"며 "여러 가지 정책 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부동산 대책반 회의를 마친 뒤 "분양가제도개선위원회에서 후분양제도에 대한 점검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분양제 관련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는 "현재로선 로드맵대로 후분양제를 시행할 것"이란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재경부가 나서서 분위기를 띄워주는 것을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2004년 2월 후분양제 로드맵을 만든 건교부로선 후분양제를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기 곤란하다. 그렇다고 후분양제를 강행하자니 신도시 주택공급이 1년 이상 늦춰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통해 "주택공급의 기준은 분양 시점이 아닌 입주 시점"이라며 "후분양제를 해도 입주 시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공급시기가 늦춰진다'는 정부의 주장은 후분양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허황된 논리"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도 논평을 통해 정부의 후분양제 재검토 입장을 비판했다.

◆ 소비자 이익은 뒷전=거의 다 만들어진 집을 직접 보고 계약을 한다는 점에선 후분양제가 소비자에게 득이 된다. 선분양제(착공과 동시에 분양)에 비해 집값 산정도 쉽다.

그러나 후분양제의 경우 분양부터 입주까지 시간이 짧기 때문에 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에겐 불리할 수 있다. 또 공사기간 중 집값이 오를 경우 분양가가 더 높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정의철 건국대 교수는 "특정 분양방식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며 "분양방식을 정부가 강제하기보다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공급계획 때문에 이미 발표했던 제도개선안을 갑작스레 손질하려 나서고, 시민단체는 후분양제만이 최선의 분양방식인 것으로 단정지으면서 정부를 공격해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한편 노대래 국장은 "뚝섬 인근에서의 고분양가 논란은 서울시가 땅값을 높게 분양해 생긴 문제"라며 "뚝섬 지역 고분양가는 주변지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직 정부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진 않지만 지자체와 관계부처가 협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고분양가에 칼을 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 등 강제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정부가 민간의 분양가를 직접 통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세무조사 등 간접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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