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사업 기금은 “그림의 떡”(경제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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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조8천여억 대부분 전용/유가 완충용은 7백49억뿐
최소한 올해안에는 올리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유가인상이 단행됨에 따라 석유사업기금의 효용성과 향후 존치문제가 새로운 관심사로 됐다.
정부는 그동안 석유사업기금을 거둬오면서 국제유가급등시에 쓰기 위한 것이라고 공언해 왔고 지난 8월 중동사태가 터진후 한달여전까지도 올해중에는 국내유가를 인상치 않겠다고 거듭 밝혀왔다.
여기에 근거가 된 것은 기금중 유가 완충용으로 적립해둔 1조8천4백39억원.
정부는 이중 7천억원 상당을 연내 동원할 수 있으며 이를 풀 경우 도입원유가가 27달러수준(배럴당 9∼12월평균)이 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제 쓴 것은 9월중 정유사들의 도입손실을 보전해준 7백49억원에 불과하며 10월중 도입손실 2천5백10억원에 대해서는 내년 1월까지 지급보전을 미룬 상태다.
유가완충자금에 대해서는 그것이 실제 빼쓰기는 곤란한 돈이라고 정부내에서도 결론을 내린 터다.
재정에 1조3천억원,산업은행 등에 4천2백39억원이 맡겨져 산업구조조정자금 등 10년 상한의 장기정책자금으로 이미 나가 있는 상태라 갑자기 거둬들이기 어렵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정부가 유가인상과 관련해 계속 재원상의 문제를 들먹인 것이나 경제기획원이 지난 2차 추경예산에서 부랴부랴 2천억원을 유가대책용으로 편성한 것도 사실 이 때문이다.
비상시 대비자금으로 쌓아 두었다던 유가완충자금은 결국 비상시에도 그림의 떡이 되고만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이미 예상돼온 것이다.
석유사업기금은 당초 유가완충(안정)과 석유비축,유전개발에 쓴다는 목적으로 지난 79년부터 징수돼 왔다.
실제 도입유가보다 비싸게 국내유가를 책정, 그 차액을 기금으로 모았다가 나중에 유가상승시에 국민부담을 덜도록 쓴다는 것이 근본취지다.
그러던 것이 85년말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기금규모가 한해 1조원내외씩 불어나자 생각이 달려졌다.
정부는 86년 관계법(석유사업법)을 개정,석유사업기금의 용도를 석탄산업지원 등 에너지관련사업으로 확대하고 더 나아가 기금중 일정부분을 여유자금 예치형식으로 재정 및 정책금융기관에 넣어 일반경제부문에도 쓸 수 있도록 정했다.
바로 이 때문에 돈이 있어도 꺼내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말까지의 전체기금 운용현황을 보면 그동안 거둔 5조4천7백4억원(운용 수익포함)중 ▲석유비축에 투·융자 및 보조를 통해 9천3백40억원 ▲유전개발에 1천8백89억원 ▲원유도입선 다변화지원에 1천10억원 등 모두 1조2천2백39억원(22%)이 당초 징수목적대로 쓰였을 뿐이며 나머지는 거의 정책자금으로 나간 ▲유가완충자금(1조8천4백39억원) ▲에너지 이용 합리화자금융자(9천7백16억원) ▲폐광 및 석탄산업지원(3천7백41억원) ▲도시가스사업(4천3백96억원) ▲전력사업지원(3천61억원) 등이 주된 사용처로 돼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정부는 『법이 정한대로 쓴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필요한대로 규정을 바꿔 풍성해진 석유사업기금을 예산심의 없이 편히 쓸 수 있는 「가욋돈」정도로 추곡수매자금이니 지하철사업지원이니 여기저기 편하게 돌려써온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올 여름의 경우 연탄값 동결재원이 필요하게 되자 예정에 없이 기금에서 1천9억원을 빼내 탄광업체등의 적자손실을 보전해 주기도 했다.
석유사업기금이 광의의 에너지지원기금이라 하면서도 구체적 사업목표가 없이 지원돼온 탓에 에너지이용합리화 융자의 경우 많을 때는 한해 3천억원 상당까지 나가던 것이 올해는 1천3백억원,그리고 내년에는 사실상 한푼도 지원이 힘든 형편이다.
정부가 다다익선식으로 거둬 이렇게 써온 석유사업기금을 계속 국민이 부담하게 할 것인지는 기금재원의 효과적 활용방안과 함께 재검토돼야 한다.<박신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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