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베어벡과 K - 리그 '상생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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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유난히 많은 축구 경기를 접할 수 있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청소년선수권대회(19세 이하)에서 남북한 유망주들의 선전을 지켜봤고, 영원한 라이벌인 대한민국과 일본의 올림픽대표 친선전이 있었다.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들 위주로 출전한 아시안컵 2차 예선 마지막 경기(이란 원정.0-2 패)도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프로축구의 한 시즌을 결산하고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K-리그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도 성대히 치러졌다. 프로팀 전북 현대가 아시아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는 기쁜 소식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축제 행렬은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들로 인해 얼룩져 버렸다. 핌 베어벡 국가대표 감독과 K-리그 클럽 감독들 간에 대표선수 차출을 놓고 벌인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이 갈등을 합리적으로 교통 정리하는 데 실패했고, 선수들은 무리한 경기 일정과 장거리 이동으로 컨디션 저하에 시달려야 했다.

논란이 된 이란 원정에 K-리그 챔피언결정전 진출 팀(성남 일화와 수원 삼성) 감독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4명의 선수를 대표팀에 포함시켰고, 특히 김두현(성남) 선수는 가벼운 부상이 있음에도 이란에 데려갔다가 결국 벤치를 지켜야 했다. 베어벡 감독은 사전에 클럽 측에 통보된 명단이었을 뿐 아니라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과 로컬 룰(local rule)인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소집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K-리그 감독들은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대표팀의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 팀의 핵심 선수들을 차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대표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 중 최근 부각되는 것이 클럽 감독들과의 원활한 관계 유지다. 대표적 사례로 전 잉글랜드 감독인 스벤 요란 에릭손의 경우 항상 먼저 클럽에 이해를 구한 뒤 과감하게 선수들을 실험했다. 그러나 베어벡 감독은 중요치 않은 경기를 양보하고 정말 필요한 기회에 클럽에 도움을 요청하는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 만일 그가 모국 네덜란드의 명문팀들인 아약스와 PSV 에인트호번이 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K-리그 경기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선수들을 관찰하던 그로서는 이율배반적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클럽 감독들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베어벡 감독 혼자 국가대표와 아시안게임 대표, 그리고 올림픽 대표의 총지휘권을 맡는 일원화 시스템도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 감독을 포함해 네 명밖에 되지 않는 코칭 스태프가 관리해야 할 선수의 숫자가 너무 많다. 그것은 압신 고트비 코치의 이란 입국 거부와 같은 돌발상황이나 11월의 국가대표 일정과 같은 특수상황에서는 효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모든 대표 경기'가 '월드컵'과 비슷하게 조명을 받는다. 이 같은 한국의 독특한 축구문화는 대표팀 감독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무리한 선수단 운용으로 연결된다. 많은 인재에게 각급 대표팀에서 뛰는 기회를 주려면 모든 대표팀 경기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이제 4년이 지났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왜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한 단계 성장하지 못하는가'라는 반복되는 질문에 이제는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의 축구 강국 브라질이 2006 독일 월드컵 실패 이후 젊은 둥가 감독을 발탁하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효웅 MBC ESPN 축구해설위원 · FIFA 공인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