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혼란 누가 책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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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법개혁 법안이 정기국회의 막바지 단계인데도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마지막 본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선 한승헌 공동위원장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지난 2년 동안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사법개혁 법률안이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사개추위는 그동안 19회에 걸친 본회의 외에도 46회의 외부 전문가 초청 토론회, 31번의 연구회, 일곱 차례의 공청회 등 숱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쳐 25개에 이르는 법률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범죄피해자보호법 등 6개 법률안을 제외한 나머지 19개 법률안이 2년의 활동 시한 종료를 코앞에 둔 현재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사법개혁 법률안은 모두 법조계의 결단과 양보를 통해 마련된 것들"이라며 "법안이 올해 처리되지 못하면 사법개혁이 다시 좌초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내년 임시국회부터는 선거 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차분히 논의할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위원장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여야 합의라는 게 하루 앞을 모르는 일인데 그 예측 불가능성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그만큼 공감대는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 어렵게 이룬 합의안 국회서 낮잠=사개추위는 대법원에 설치됐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의 논의 결과를 법제화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사개위에서는 로스쿨.배심원제.고법상고부 등을 도입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사개추위가 추진하려던 현안 가운데는 여전히 이견이 많은 상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4월부터 불거진 검찰 집단행동 파문이다. 사개추위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논의하자 검사들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사개추위는 결국 검찰 측 입장을 일부 수용해 그해 7월 수정안을 내놓았다.

법률전문대학원(로스쿨)법과 양형 기준을 계량화하기 위한 법원조직법, 법조윤리를 확립하기 위한 변호사법 개정안 등 주요 법률안들도 이해집단 간 의견충돌이 심했다. 그런 갈등을 수렴하면서 25개 법안을 만들었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6개 법안을 제외하고는 아직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6개 법안은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 됐다.

그러는 동안 잠복했던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다시 터져 나왔다. 9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자는 취지의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이 기폭제였다. 이달 들어서는 론스타 관련자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사개추위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선수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은 "갈등의 주된 요인이 되는 내용이 모두 개혁입법안에 들어 있다"며 "국회가 빨리 법안을 통과시켜준다면 법원과 검찰의 긴장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로스쿨 도입 어떻게 되나=심의가 미뤄진 법안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가 로스쿨법이다. 교육부는 처음에 2008년 개교를 목표로 로스쿨 도입을 추진해 오다 2009년 3월로 이미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 교육위는 로스쿨법을 사학법 개정과 연계해 손대지 못하고 있다. 사학법만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출신 의원들의 반대도 심한 상황이다. 또 선정 과정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대학들의 로비도 거센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로스쿨법 통과 전망을 묻는 질문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로스쿨법 통과가 무산될 경우 40여 개 대학이 투자한 2000억원의 시설비와 370여 명의 강사들은 발이 묶일 형편이다.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로스쿨 진학으로 진로를 바꾼 수험생들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른 법안들도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법조 출신 법사위원들의 반대가 심한 형편이다. 공판중심주의 도입 근거가 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심해 법사위원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계추위 관계자는 "논의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접근이 충분히 이뤄진 만큼 여야가 합의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극적인 타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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