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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권리 개선, 한국은 몇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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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일은 유엔 총회에서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지 17주년이 되는 날이다. 세계에서 미국.소말리아 등 두 나라를 제외한 192개국이 모두 비준한 이 협약은 "이 세상 모든 어린이는 국적, 인종, 성별, 출생 신분에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생존할 권리, 발달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그리고 어린이와 관계되는 일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아동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리를 박탈당한 채 빈곤.무지.학대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수억 명의 어린이가 지구상에 있다. 협약이 18세 미만으로 규정한 아동 수는 약 24억 명, 이 중 약 10억 명이 50여 개 최빈국.개발도상국의 극빈층 아동들이다. 이들은 하루 1~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

아동권리협약 발표 이후 아동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괄목할 만하게 이어져 왔다. 1990년에는 사상 처음 세계 정상들이 어린이를 의제로 한 세계아동정상회담을 열고 아동 사망률 감소 등 27개 목표와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그리고 국가별로 아동복지 10개년 계획을 세워 추진하라고 권장했다.

2000년까지 180여 개국이 추진해 온 아동개선사업과 아동권리 이행 성과는 2002년 5월 유엔아동특별총회를 통해 평가됐고, 향후 10년간 성취해야 할 중점과제를 담은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채택됐다. 2000년에 채택된 유엔의 새천년 개발목표(MDG)의 8개 항목은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이 제시한 아동발전 21개 과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난달 나온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아동폭력 보고서'는 아동복지를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유엔이 폭력을 근절하고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3년 동안 지구상의 각종 폭력을 조사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위험 수위를 넘은 신체적 폭력은 물론 빈곤.출신.용모.장애를 이유로 친구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현상을 심각한 아동폭력으로 간주했다. 아동의 권리문제를 생존권이나 교육받을 권리에서 더 나아가 '이해와 관용의 정신'을 배우는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1년 국내법과 맞지 않는 3개 조항(자녀의 부모 면접권, 입양허가제, 어린이의 상소권 보장)을 유보하고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그 이후 협약 정신에 따라 가정폭력특별법(1997)과 청소년 성보호법(2000) 제정, 최소 고용연령 상향 조정, 남녀 혼인연령 통일 민법개정안 제출 등의 입법조치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등 아동 권리 분야에서 적지 않은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협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우리 정부에 대해 유보조항 철폐를 비롯해 학교체벌 금지와 다른 인종 및 한 부모 가정, 혼외출생아동, 장애아, 이주가정자녀 등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 입법화 등 63개 항을 권고했다. 이 중 3개 유보 조항 등 여러 가지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동안 아동권리협약으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아동과 관련된 새로운 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됐다. 아동권리협약은 이 세상을 아동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법적.도덕적 틀을 제공하고 아동을 위한 일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이 협약의 준수가 더욱 필요하다.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 한국NPO 연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