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석재의천문학이야기

유성들이 떨어지는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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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1년 11월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우주쇼'를 관람했다. 유성들이 시간당 몇 천 개씩 떨어진 것이다. 유성이 그렇게 비처럼 많이 떨어지는 현상을 유성우라고 한다. 유성우 현상은 혜성들이 남긴 잔해 속으로 지구가 들어갈 때 일어나며 1년 동안 여러 차례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수능시험일 앞뒤로 나타나는 '수능 유성우', 즉 사자자리 유성우가 제일 유명하다.

올해에는 이 사자자리 유성우가 바로 오늘(18일) 밤에 나타날 예정이다. 부모.자식 간에 밤하늘을 같이 올려다보는 것보다 더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또한 남녀 친구들이 합법적(?)으로 같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을 훌훌 털어버리고 유성들이 떨어지는 밤을 맞이하러 떠나자. 운이 좋으면 하늘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유성이나 빨간 불덩어리처럼 나타나는 유성도 볼 수 있다.

오늘 밤 자정 무렵 동쪽 지평선 위에 밝은 노랑 별이 떠오르는데 이것이 바로 토성이다. 토성은 현재 사자자리에 있는데 토성 바로 밑의 밝은 별이 사자자리에서 가장 밝은 레굴루스라는 별이다. 유성들은 마치 토성에서 출발해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자정 전에는 동쪽 지평선 아래에서 천장을 향해 올라오는 유성들을 주로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밤에는 그믐달이 새벽 5시가 넘어야 뜨기 때문에 달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유성우가 가장 화려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각이 오후 1시45분이어서 맥이 빠진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유성우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이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에는 대대적으로 홍보가 됐지만 별로 나타나지 않았고 2001년에는 별로 홍보도 안 됐지만 그렇게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늑대와 소년 얘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유성우를 관측하는 일에 무슨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겠는가. 하룻밤 사이 몇 십 개의 유성만 봐도 평생 볼 유성을 다 보는 것 아닌가.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소원 하나씩 비는 우리 풍습을 생각하면 오늘 밤은 한꺼번에 수십 개의 소원을 빌 절호의 기회다. 또한 오리온.쌍둥이.황소 같은 별자리를 같이 셀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런 목적이라면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같은 단체나 시민천문대를 검색해 찾아가면 된다.

유성우를 관측하는 요령이나 장비는 따로 없다. 오늘 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도시 불빛을 피해 시야가 트인 캄캄한 곳으로 가면 된다. 가장 어두운 장소로 가면 무려 3000개의 별을 볼 수 있다.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면 목이 아프므로 두꺼운 옷을 입고 자리에 누워서 보는 것이 좋다. 유성을 기다리며 베토벤의 '월광'을 들어도 좋고 우주 얘기를 나눠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낮과 밤이 교대로 바뀐다는 지식만을 가지고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루라도 우주를 가까이 해보라고 권한다.

뭇 별들은 광속으로 여행해도 몇 십 년, 몇 백 년 걸리는 먼 곳에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TV에서 별들이 가로수처럼 뒤로 지나가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이는 물론 엉터리다. 도대체 무엇을 타고 그렇게 광속보다 빨리 우주여행을 한단 말인가. 이는 신생대에 출현한 원시인이 중생대에 절멸한 공룡과 싸우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대략 100억 광년 정도 떨어진 우주까지 관측하고 있다. 관측되는 그 우주공간을 지구 크기로 축소하면 우리 해는 수소원자 크기로 작아진다! 해가 지구보다 지름이 100배가량 크니까 지구는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작은 지구표면에서 아귀다툼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