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학 허구 진실 열띤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수필은 체험이나 사실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양식인가, 아니면 창조적 문학예술이기 때문에 허구의 도입도 가능한 양식인가.
전문지·단행본·각 기업체의 사보 등 발표지면의 확대에 힘입어 누구나 쓸 수 있는 짧고 감칠맛 나는 문학장르로 날로 인기를 더해 가는 수필의 허구성에 대한 시비가 재연되고 있다.
한국수필 문학진흥회는 3∼4일 충남 온양시 그랜드 파크 호텔에서 「수필에서의 체험과 허구」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갖고 80년대 들어 수필의 팽창과 함께 과제로 떠오른 허구의 수용여부문제를 집중 토론했다.
이 세미나에서 정운권씨(수필가)는 「수필과 허구에 대하여」란 주제논문을 통해 『수필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또는 의미로서 한편의 작품을 창조한다는 뜻이요, 허구는 그 창조를 위한 미더운 수법』이라며 수필이 허구일수 있음을 주장했다. 정씨는 허구의 개념을 「체험(사실)의 수정·조립 등 작품의 제작 수법」이라며 문학의 한 특질로 보았다.
따라서 정씨는 수필도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인 이상 허구도 허용될 수 있으며 나아가 수필문학의 창조적 지평확대를 위해 허구의 과감한 도입을 주장했다.
이 같은 정씨의 허구 옹호론에 대해 윤모촌씨(수필가)는 토론에서 『수필문장은 진실을 재현하는 것뿐이고 그런 까닭에 그것은 인격의 표출로 귀결된다』며 수필에서는 결코 허구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수필문학은 『작가 체험의 고백적 자기 현시로 사실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쓰이는 양식』인데도 「문학」 「예술」만을 강조, 허구를 도입하는 것은 수필의 본질을 망각, 수필을 말장난으로 빠뜨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말장난 같은 미문으로 미숙한 독자와 상업적으로 영합, 인격적 감화를 주기는커녕 감상적 퇴폐로 빠뜨리는 일부 베스트 셀러 작가나 시인들의 수필도 허구론에 빠진 결과라며 수필 허구론의 대 사회적 폐해를 지적했다.
한편 이정림씨(수필가)는 「수필에 있어서의 사실과 진실」이란 주제논문을 통해 「허구」와 「허구성」을 구분함으로써 수필의 허구시비에서 중간적 입장을 취했다. 이씨는 마치 남자가 여자인 것처럼, 교수가 운전기사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허구」이고 허구가 아닌 사실체험에서 그것을 좀더 진실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구성상 수정과 보완하는 것은「허구성」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수필은 사실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인물의 기록은 아니다』며 수필도 문학인 이상감동의 전달을 위해 「허구성」까지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