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과 47일』 책 출간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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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수경이와 지낸 47일간의 일들을 2백자 원고지 l천5백장 정도로 정리해 책으로 펴낼 생각입니다. 올해 말까지는 원고를 모두 끝낼 계획입니다.』
지난해 6월30일 임수경 양이 북한의 순안 비행장에 내린 순간부터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판문점을 통과하기 바로 직전까지 임양과 함께 지냈던 안내원 정명순씨 (42).
마침 평양에서 열린 범 민족 통일 음악회 에 참가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서울 전통 음악 연주단 일행의 안내를 맡았다. 지난 14일 평양행 특별 열차를 타기 위해 판문각에서 개성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자 『제가 수경이도 안내했던 사람입니다. 수경이는 잘 있답니까』하고 첫인사를 건넸다.
이번 북한 취재 기간 중 어딜 가나 『수경이는 언제 석방됩니까』 『수정 언니는 앓지나 않는 답니까』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정씨는 임양에 대한 기억을 더듬곤 했다.
『우리 인민들에게는 수경이가 「통일의 꽃」이지만 너무 정들어서인지 제게는 친동생이나 친딸 같이도 여겨집니다.』
임양은 언제나 연설문 준비 등으로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이른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학생들을 만나는 등 바빠서, 정씨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벼르기만 했지 결국 못 만났다고.
『서울에서 남학생이 몇명쯤 세계 청년 학생 축전에 참가하러 올 줄 알았는데 겨우 여학생 한명이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는 정말 낭패스러웠지요.』 그러나 임양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임양이 탄 벤츠 승용차가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전후 좌우에 매달리는 등 「해방이래 가장 무질서한 장면」을 연출했다고 정씨는 회상했다.
임양이 방문했던 김일성 종합 대학·김형식 사범 대학·평양 영화 연극 대학·평양 외국어 대학·김책 공업 대학에는 임양이 명예 학생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지난여름 학기 때 이 대학들이 모두 졸업장을 주었는데 평양 영화 연극 대학 졸업식 때는 정씨도 초대받았다고. 임양의 졸업 논문은 동급생들이 「집체적」으로 작성했으며 노트도 번갈아 정리해 놓았고 임양의 자리에는 이름표가 아직도 붙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북한 여성들과는 달리 억양이 투박하지 않고 세련된 말씨와 용모가 돋보이는 정씨는 지난 70년 김일성 종합 대학 어문학부 신문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주간 신문 「통일신보」 기자를 거쳐 현재 조국 평화 통일 위원회에서 근무하며 「임수경 석방 투쟁 조절 위원회」에서도 여운형 선생의 친딸 여연구씨와 함께 일하고 있다.【평양=김경희 기자·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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