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시트콤의 성패는 상상력·설득력에 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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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춘시트콤 '논스톱'이 쉼 없이 달려 급기야 시리즈 4에까지 이르렀다. 그 전에 방송된 '가문의 영광'이 제작진에게 영예를 안겨주지 못했고 그 전작인 '점프' 또한 기대만큼 도약하지 못한 데 반해 '논스톱'은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청춘시트콤의 원조는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지금도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 중인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인물 구도를 요긴하게 빌려왔지만 철저하게 한국적 정서로 '이양'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초기의 표절 시비를 가뿐히 이겨냈다. '남자 셋 여자 셋'이 '논스톱 4'로 바뀌는 동안 시간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흘렀고 주된 공간은 하숙집에서 대학 동아리방으로 이동했다. 중심인물의 성비(性比)도 3 대 3에서 남자 일곱 대 여자 둘로 바뀌었지만 줄기가 되는 사건은 여전히 연애담 주변을 줄기차게 맴돌고 있다.

'논스톱 4'가 '논스톱 7', 아니 '논스톱 10'까지 가려면 모름지기 근본에 충실해야 한다. 청춘시트콤의 세가지 핵심은 청춘과 시추에이션, 그리고 코미디다. 이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재미와 감동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생명력은 오래도록 빛을 발할 것이다.

부박하게나마 세 핵심을 하나씩 점검해 보자. 우선 제작진은 청춘의 특성을 간파하지 않고 간과하고 있다. 청춘은 발아(發芽)하고 발효하는 과정이다. 청춘을 보석에 비기는 까닭은 그것이 완성을 향해 부단히 고민하고 모색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논스톱 4'를 보면 제작진의 고민(짧은 기간에 최대한의 효과 내기)은 절절하게 느껴지는 데 반해 출연진의 고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괴짜로 보아도 무방할 개성 만점의 주인공들(MC몽, 봉태규 등)은 청춘의 특성보다는 유년의 추억을 화석처럼 안고 사는 사람들로 보인다. 입만 열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요즘 청년실업 문제…"운운하는 법대생(앤디)조차도 기계적 캐릭터로 일관하고 있다. 인간보다는 오히려 인형에 가깝다는 느낌마저 준다.

청춘시트콤은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가능성 있는 예비스타를 확실하게 키우는(띄우는) 텃밭 노릇을 해온 일면도 있다. 송승헌.장나라 등은 청춘시트콤에서 처음 주목받았다. 이에 반해 '논스톱 4'는 이미 상품성을 인정받은 스타들(신화의 전진, 앤디, CF 스타 장근석 등)에게 의존하려는 징후가 오히려 눈에 거슬린다. 기왕에 청춘시트콤의 적자(嫡子)로 계보를 이으려면 스타를 소비하지 말고 스타를 생산하는 일에 신경쓰기 바란다. 스타의 산실이 되는 편이 스타의 온실이 되는 것보다 낫다.

시트콤의 성공 여부는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캐스팅으로 담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단 캐릭터가 구축되면 그 다음은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긴장감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추에이션'이다. 시추에이션에는 시의성과 인과성을 담아내야 한다. 그 캐릭터가 그 시추에이션에서 어떻게 반응(도전)하느냐가 시청자에겐 흥미(호기심)의 척도가 된다.

마지막으로 코미디는 상상을 통한 설득적 공감대다. 비틀거리는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들끓는 상상으로 시청자를 흥분시켜라. 상상은 상상력이 되지만 공상은 공상력이 되지 못한다. 몽상이나 망상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력과 설득력이 충돌했을 때 생겨나는 묘한 굉음이 코미디의 여운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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