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김승규 국정원장의 정치 삼중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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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규 국정원장이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고 즉시 사표를 제출했다. 국정원장이 간첩단과 목숨을 바꾼 것이다. 예전 같으면, 고정간첩이나 무장간첩단 체포는 국정원장에게 훈장을 안겨 주는 빛나는 전과였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자 간첩 문제는 매우 미묘한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됐다. 국보법 폐지 논쟁 이후로 간첩의 규정이 애매해진 탓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장민호의 행각이 과연 '전통적' 간첩 개념에 맞아떨어지는지, 아니면 김정일 찬양 문서를 소지한 것이 간첩 입증이 되는지 이미 너덜너덜해진 '주적 개념'으로는 딱히 라벨을 붙이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 '간첩'이란 말은 위험한 용어였지만, 이제는 불쾌한 단어로 바뀌었다. 무대 뒤에서 암약해 봐야 단단해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탓하겠지만 어쩌랴, 이미 간첩은 용도 폐기를 기다리는 구시대의 비밀 병기인 것을. 이런 의미에서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무소불위의 권력체로서 안기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권 실세에 밀착해 수세적 정국을 돌파해 줄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암흑의 사령부가 안기부였다. 그러던 안기부가 수족 다 떼이고 국정원이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개명돼 탈정치화된 힘없는 기구로 바뀌었다. '도대체 뭐하고 있는가' 하는 국민의 비난 여론에 자주 시달릴 만큼, 국정원은 권력 밖에서 조바심을 태우던 터였다.

이런 와중에 일심회 사건을 터트린 김승규 원장의 속마음은 매우 복잡한 난기류로 뒤덮였을 것이다. 핵실험이라는 김정일의 강수, 놀란 가슴 추스르기 바쁜 청와대, 하늘이 무너져도 포용정책의 정당성을 외치는 386 정치인들의 경직된 친북주의가 서로 얽혀 돌아가는 '불온한 무도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을 일시에 정지시킬 폭탄을 손에 들고 안전핀을 뽑을지, 아니면 춤판을 지켜주는 경비대장이 될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안전핀을 뽑았고, 춤판을 엉망으로 만든 죄목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것은 '미묘한 시기'에 터진 '미묘한 사건'이고, 미묘함의 연출로 자청한 '미묘한 사의(辭意)'였다. 이 중첩된 미묘함은 사실상 권력의 외곽에 밀려나 있는 국정원장이 감행할 수 있는 '정치 삼중주'였다.

국정원장이 던진 패는 세 개의 타깃을 겨냥하고 있다. 하나는 현 정권의 포용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의 발생 근원을 폭로하는 일이다. 1970~80년대 흔했던 여느 간첩단처럼 일심회 멤버들이 정보산업의 최전선에서 정계와 시민사회에 폭넓은 친분을 쌓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들이 현 정권의 주도 세력과 탄생 기록이 같다는 사실은 진위를 떠나 가히 파괴적인 효과를 창출한다. 정권의 중심부에 있는 '그들이' 간첩일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혐의에 물증을 대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타깃은 평양의 강수에 짓눌려 신음만 뱉고 있던 청와대다. 어느 국가든 외교와 안보는 대체로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담당한다. 외교와 안보만큼 경력과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없으며, 정책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알아야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도 초지일관의 자세로 대하는 그 '무지한 행보'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일침을 가했고, 스스로 자진했다. 현 정권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정권의 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폭탄을 투하하고 자진(自盡)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기 정권에서 '화려한 부활'을 겨냥한 방법론적 자진이다. 화려한 부활에의 예감, 이것이 세 번째의 타깃이다.

국정원장이 겨냥한 '정치 삼중주'에서 두 개의 변주는 소기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시나리오도 근접할 수 없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세 번째 타깃은 과연 적중할 것인지 궁금하다.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는 '진정한 타짜'인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