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라오'가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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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내 칸 칼리리 시장의 한 전 통 기념품 가게.

이집트 수도 카이로 서부의 구시가지에 있는 칸 칼릴리 전통시장. 고풍스러운 중세 이슬람 유적과 이국적인 전통 상품으로 유명한 이곳은 항상 외국 관광객들로 붐빈다. 하루에도 수백 대의 버스가 들어온다. 상인과 관광객의 흥정 속에 상점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다. 하지만 시장으로 연결되는 좁은 골목 골목은 요즘 침울한 분위기다. 이 골목들은 1000년 이상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어 온 장인들의 거주지다.

이곳에서 동판에 작은 정을 쪼아 파라오 문양을 새겨 파는 타리크 하팀(63)은 "밀려오는 중국제품 때문에 밥줄이 끊어질 정도"라며 한숨을 쉰다.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이집트 전통 공예품이 몇 년 전부터 본고장인 이곳 칸 칼릴리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투탕카멘.람세스 2세.네페르티티 여왕 등 이집트 고대사에서 유명한 파라오와 왕비 모양을 넣은 공예품의 대부분이 중국제다.

22년간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해 온 아딜 마그와리(47)는 "지난 2~3년 사이에 시장이 중국제품에 완전 점령당했다"며 "시장 옆 공방에서 만든 크리스털 피라미드 모형은 135이집트 파운드(약 2만3000원)인데 중국산은 20파운드(약 3500원)로 7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후사인 아마드(39)는 "복제품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은 신기술을 적용해 이집트와 관련한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며 "예를 들어 전자 칩을 넣어 소리를 내는 파라오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집트 수공업자들은 속수무책이다"고 말했다. 알아흐람 등 이집트 주요 신문들은 최근 중국산 유입에 따른 전통 수공업의 붕괴 현상을 특집 보도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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