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일「유엔평화협력대」 창설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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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위대 파병위한 눈가림” 논란/정부 “현 제도론 경제대국 책임 다 못한다”/야당 “병력 해외파병의 길 열어줄 우려”
중동사태에 대한 일본의 지원책을 두고 『돈만 내고 사람은 보내지 않는가』는 세계여론의 지탄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유엔평화협력대」 창설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안은 비무장 자위대요원을 「평화협력대」라는 옷으로 갈아 입힐뿐 사실상의 자위대 해외파병으로 연결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곧 열릴 가을 임시국회에서도 야당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12일까지의 윤곽이 드러난 일정부의 「유엔평화협력법안」의 골격은 ①유엔의 평화회복 유지활동에 협력한다는 목표를 내건다 ②방위의관이나 경찰ㆍ소방ㆍ지방자치체 직원ㆍ민간인 등 구급의료ㆍ통신ㆍ수송 등의 분야에서 필요한 훈련을 받은 비무장 요원을 평시에 등록해 둔다 ③필요에 따라 유엔평화협력대를 기동적으로 편성,대원에게는 국가공무원 신분을 부여한다 ④규모는 수백명 내지 1천명 정도로 한다 등으로 짜여 있다.
한 일본정부 수뇌는 이 법안을 두고 『헌법의 범위안에서 새 법을 만들뿐 자위대법 개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정부내에서 어느 정도 의견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이 내용을 두고 사카모토(판본) 관방장관은 9일 고모토(하본)ㆍ가네마루(금환)ㆍ미야자와(궁택)ㆍ와타나베(도변)ㆍ아베(안배) 등 각 파벌 영수들을 개별 방문,법안작성의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가이후(해부) 총리의 방미전에는 최종안을 마련할 방침으로 보인다.
사카모토 장관은 각 파벌 영수들과의 일련의 회담에서 유엔평화협력법을 서두르게 된 배경에 대해 『현제도로서는 일본이 경제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말하고 그 이유로 『8월말에 공표,실시할 예정으로 있는 지원책이 요원파견면에서 아무런 신분보장도 없는 민간의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없다』고 문제점을 강조,새로운 입법조치를 통해 이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문제는 비록 의무관 및 운수ㆍ통신분야에 국한된 자위대원만을 보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일 정부의 법제정 의도는 정치상 쟁점을 건드리지 않고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자는 편법동원이라는데 있다. 이에 대해 「평화헌법」준수를 외치는 사회당등 야당이나 자민당내 온건파로부터 『결국 자위대의 해외파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거센 비판이 나올 것은 분명하다는게 정계관측통들의 전망이다.
한편으로 『떳떳하지 않게 속임수를 쓰느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위대법 개정을 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자민당내 강경파에서 나오고 있어 파란이 예상된다.
이시카와(석천) 방위청장관도 11일 와타나베와 만난 자리에서 유엔평화협력대 창설이 자위관의 위장파견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자위관을 외무성이나 문부성으로 파견하는 형태로 신분변경을 시킬 수는 없다』고 말해 차라리 자위관 신분 그대로 파견시켜야 한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또 일본정부가 유엔평화협력법안의 기본으로 하고 있는 「유엔 중심주의」도 하나의 허울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중동에 배치되고 있는 미군중심의 다국적군을 유엔군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으로 결국 미국의 대 중동전략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하지만 석유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중동지원책이 미흡하다는 미국내 여론이 만만치 않아 글로벌 파트너십(지구적 우호관계)을 약속한 가이후 총리로서는 미국방문을 앞둔 선물보따리로 이 법안을 어떤 형태로든 제시해야될 난처한 입장에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중동지원을 핑계로 차제에 자위대법을 개정,아예 해외파병의 길을 열자는 일본정부내 매파의 목소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지가 주목된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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