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대저택 안의 탐욕과 증오와 음모 … 삶은 전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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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들녘
316쪽, 1만2000원

사랑은 순식간에 증오로 변할 수 있다. 기나긴 세월동안 사랑인 줄 알았던 그 무엇이, 사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였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랑이나 배신, 타협이었다면 그 사랑의 정체는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쓰러져가는 대저택에 두 여인이 20여 년째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히드와 크리스틴은 둘 중 하나가 먼저 죽기만을 기다리며 각자의 공간을 지킨다. 한때 지역에서 최고의 호텔 리조트를 운영해 흑인으로는 큰 성공을 거둔 코지는 메뉴판에 끼적인 메모 외엔 별다른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뜬다. 히드는 코지의 마지막 아내였고, 크리스틴은 코지의 하나뿐인 손녀다.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한 공간에서 팽팽히 맞서던 둘의 균형은 한순간 무너진다. 글을 쓸 줄 몰랐던 히드가 유언장을 조작하기 위해 흑인 소녀 주니어를 채용하면서다. 사실 크리스틴과 히드는 절친한 소꿉친구였다. 그러나 코지는 11살짜리 히드를 아내로 선택했고, 히드의 부모님은 한 점 망설임 없이 어린 딸을 늙은 갑부에게 시집보냈다. 어른들의 탐욕이 끼어들고 집안 여자들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면서 둘의 우정은 목숨을 건 증오로 변한다.

그 싸움에 끼어든 주니어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탐욕스럽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무관심한 어머니, 학대하는 삼촌을 피해 세상에 적응하느라 영악한 여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악다구니를 써가며 다투는 이 흑인 여성들의 삶이 과연 그들만의 탓은 아닐 터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에게 세상이란 그저 전쟁터일 뿐이었으니까.

시시각각 시점과 장소가 바뀌며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성 때문인지 그리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퍼즐 조각이 맞춰지면서 읽는 재미가 살아난다. '빌러비드''재즈' 등 저자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다면 작가노트 격인 '머리말'은 건너뛰고 소설 본문부터 읽는 게 나을 듯하다. 저자는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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