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 유원지 시민정신 "0점 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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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마솥더위를 피해 당일치기 피서객들이 대거 몰려든 서울시내·근교계곡은 부도덕과 무질서로 뒤범벅이 된 「시민의식 0점 지대」였다.
계곡의 노루목을 점유한 상인들은 자릿세 징수와 바가지요금 등 악덕상혼으로 한몫잡기에 바빴고 이곳을 찾은 행락객들도 더위에 고삐물린 듯 도박·과음·고성방가·과다노출·노상방뇨·쓰레기방치 등 난장판이었다.
8일 오후1시쯤 서울정능계곡.
계곡초입부터 약1㎞에 이르기까지 무허가상인들이 마구 쳐놓고 깔아놓은 천막과 평상·돗자리로 산자수명의 골짜기는 예의 꼴불견이었다.
더욱이 은밀히 자릿세 또는 일정액 이상의 매식을 강요하는 상인들로 계곡은 더 이상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일가족 5명과 함께 이곳에 놀러왔던 신모씨(36·회사원·서울개포동) 일행은 자릿세를 내지 않고 계곡물 옆 바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가 노점 주인이 바로 위쪽에 막아두었던 물꼬를 갑자기 터 심술부리는 바람에 물벼락을 맞고 주인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계곡은 또 행락객들의 추태에도 찌들고 있었다.
3∼4명 이상이 모인 행락객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스톱판을 벌었고 10여명 이상의 집단들은 밴드를 동원, 고성방가와 춤판에 흐느적거렸다.
이중 일부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팬티 등 속옷차림.
8일 오후2시쯤 서울 우이동 계곡도 3천여명의 행락객들과 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쓰레기장은 물론 상인들이 자리를 마련해둔 계곡 그늘진 곳 주변엔 쓰레기가 넘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들 계곡에 빠질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바가지 상혼.
3∼4명이 자릿세를 내지 않고 계곡에 앉기 위해선 1만5천∼2만원짜리의 통닭을 주문해야 한다.
또 음료수의 경우 3백원짜리 넥타가 6백원, 정가 7백원인 캔 맥주가 1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과천시 청계산의 경우 노점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도 옆 공터에 주차시키는데 무려 5천원의 주차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행락 추태는 심야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8일 오전2시쯤 서울 우이동 계곡에 늘어선 50여 곳의 대형갈비찜 등 음식점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고 행락객들의 노래 소리와 도박판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의 심야영업을 전혀 단속치 않았고 행락객 중 일부는 음주운전으로 귀가하는데도 단속이 없었다.
7일 오후11시쯤 서울잠실·뚝섬 등 한강고수부지에는 심야대를 못이긴 시민들이 구역별로 2천여명씩이나 몰려 있었고 이들 중 다수는 속옷차림으로 음주·고성방가·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또 화장실이 간이시설인데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데나 방뇨하는 시민들의 추태가 목격됐고 과일껍질·비닐봉지 등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들 시민들을 상대로 한 바가지상혼도 판쳐 포장마차에서 코피한잔에 1천원, 컵라면 1개에 1천5백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이상일·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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