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너무도 허술한 개인정보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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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국정감사에서 대형 로펌의 판.검사 출신 변호사 20여 명의 연봉이 6억~27억원에 달한다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언론에서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퇴직 전 법원과 검찰의 직책 등이 표시돼 있어 법조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국내 유수 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의 연봉 등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평소 개인정보 보호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러한 자료가 어떻게 공개될 수 있었을까 궁금하였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 문제를 파헤친 모 국회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로펌 변호사 명단과 일일이 대조해 분석했다고 한다. 그 의원은 당초 국세청에 변호사의 납세증명 자료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건보공단에 직장가입자 소득액 자료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보공단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자료를 원래 수집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국회의원 등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물론 전관예우는 당연히 근절해야만 하는 잘못된 법조 관행이고, 엄청난 연봉을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개인정보의 공개가 법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나 사법개혁의 실현 등을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공개함으로써 잘못된 점을 시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전혀 관계가 없거나 공개되지 않아도 될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공개되는 것 또한 분명히 막아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갖고 있는 개인정보 가운데는 민감한 내용, 예를 들어 질병이나 복용하는 약 등에 관한 정보는 다른 개인정보보다 더 많은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것들이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의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특히 컴퓨터를 통한 개인정보의 처리가 전산망과 전산망의 연결을 통하여 '공동 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개인정보가 침해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다가 피해를 본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원래 수집된 목적과는 다른 목적으로 개인정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감독할 개인정보 보호기구조차 우리나라에는 없다. 지금 검찰.경찰을 비롯하여 힘있는 국가기관이 법적 근거가 없거나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수히 많은 개인정보를 다른 기관들에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정보의 제공이나 이용이 필요하고 적법한지를 가려줄 기관은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해당 개인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수집된 원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번 사안만 보더라도 건강보험료 징수나 국민의 건강관리를 위하여 수집된 정보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그것이 공개된 뒤에야 당사자가 자신의 정보가 공개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물리적인 권리 침해와 달리 개인정보는 공개된 뒤 이를 '사후적으로' 교정.보호한다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침해되기 전에 개인정보를 보호하고자 세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원래 국민의 알 권리나 정보공개는 국가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지 다른 개인의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개인정보가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 또한 보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무수히 많은 법률 중에는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안도 있다. 따라서 개인정보의 공개나 이용은 법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필요한 범위 안에서 해야만 한다. 그것이 불충분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보호되면서 국민의 알 권리나 정보공개 등도 함께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일환 성균관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