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10명 중 9명이 위암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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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감스럽게도 일부 의사들도 전문가 곤조에서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큰 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검사 결과를 침소봉대해 이익을 꾀하는 것이지요. 최근 국감에서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밝힌 일선 병원에서의 암 검진 실태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대구 소재 한 병원은 위암 검진자의 91.7%가 위암이 의심된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전국 평균인 3.23%에 비해 28.4배나 높은 비율입니다. 의사들의 환자 겁주기는 일견 이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괜찮다고 말했다가 만에 하나 암이 생기면 의료소송 등 곤욕을 치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관적으로 말했다가 좋아지면 칭찬받지만, 낙관적으로 말했다가 좋아지지 않으면 비난받는 것도 이유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10명 중 9명을 암 의심자로 둔갑시키는 판정은 상식 밖입니다. 여기엔 추가적인 비보험 정밀검사를 유도해 진료수익을 높이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보입니다. 일부 병원의 사례로 전체 의료계를 매도할 순 없겠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겁주기식 과잉진료에 대한 대책은 마련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2차 의견(secondary opinion)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른 전문가의 견해를 구하자는 것이지요. 언뜻 번거로운 중복진료로 보이지만 과잉 진료를 막고 오진을 줄일 수 있어 선진국에선 보편화한 진료 행태입니다. 이 환자가 다른 전문가를 찾으리라 예상한다면 터무니없는 겁주기식 판정을 내리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암이 의심되는 종양이 있다는 이야길 듣는다면 검사 결과나 필름의 복사본을 요청하기 바랍니다. 이는 의료법상 보장되는 환자의 권리입니다. 복사본을 들고 꼭 다른 전문가를 만나보기 바랍니다. 유명 대학교수 등 전문가를 만날 때까지 한두 달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 암이 자라지 않을까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암은 일조일석에 자라는 병이 아닙니다. 암세포 한 개가 증세를 유발하는 지름 3㎝ 내외의 종양으로 자라는 데 3~4년가량 소요됩니다. 한두 달 빨리 치료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가 곤조는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감시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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