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돌 한 조각을 손에 쥐고…"|문정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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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얼마 전에 조그마한 문진을 친구로부터 선물 받았다. 그저 손가락마디로 두 마디쯤 될까? 희끄무레한 시멘트와 거무튀튀한 암석이 뒤섞인 울퉁불퉁한 돌 조각을 속에 넣어만든 문진이었다.
나는 서예에 관해서는 도대체 문외한이라 「별 싱거운 녀석 다 보겠네. 이제 와서 나보고 붓글씨를 배우라는 건가」하면서 옆으로 밀쳐 놓으려다가 뒷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깨진 돌 조각이었다.
못 생기고 보잘 것 없는 돌 조각, 어디서나 흔히 물 수 있는 이것을 없애기 위해 1945년 포츠담협정이 조인된 후 동·서독으로 나뉘어 서로 분단의 아픔을 되씹으며 오늘의 통독이 오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겠는가. 같은 운명을 짊어진 우리이기에 그 심정을 십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또 그저 허물어 버리는데 그치기 않고 역사를 증언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돌 조각을 하나의 기념품으로 만들어내 그 돌 조각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겨보는 그네들의 「작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생활철학」도 우리가 배울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가로 2.5㎝, 세로1.5㎝ 정도의 돌 조각을 모두 상품화하여 전세계 인류에게 철의 장막을 거두어버린 사실을 알리는 일, 그 돌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그 누가 모르랴.
우리의 38선은 언제 없어질까. 언제쯤 서로가 아껴주는 그런 방송을 할 수 있을까. 한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도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압록강물에 손도 담가보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크게 고함도 질러볼 그날을 기다려본다.
철조망을 거두어 버리는 그날이 오면 온 겨레가 기쁨 속에 조각조각 철조망을 나누어 전세계로 보내고 어려웠던 옛날을 상기해불 그날을 기다리며 작고 못생긴 돌이지만 커다란 의미가 담긴 문진을 다시 한번 어루만져 본다. <부산시 중구 중앙동2가 39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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