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늘푸른 소나무 - 제3부 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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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원일 최연석 화
구름이 낮게 낀 새초롬하게 추운 날씨였다. 석주율이 다른 수인 둘과 함께 간수를 따라 교무과 앞마당으로 나가니 벌써 서른 명에 가까운 수인들이 사물 보퉁이를 들고 집결해 있었다.
마흔 명이 인원이 채워지자, 간수장전 노무라와 외투를 입고 귀가리개 딸린 방한모를 쓴 사십 대 초반의 사내가 교무과에서 나왔다. 뒤따라 나온 건장한 젊은이 세 명이 수인들의 양 옆과 뒤쪽에 섰다. 인상이 고약한 그들은 군복 비슷한 누른 상의에 홀테바지를 입었고 허리에는 몽둥이와 가죽채찍을 차고 있었다.
먼저 인원 점검이 있고 나자, 그 자리에서 붉은 죄수복을 벗고 보퉁이에 담아 온 제가끔의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대체로 바지 저고리였으나 검정 학생복도 두 명 있었고 두루마기 차림도 다섯 명이나 되었다. 석주율은 선화가 차입해 준 진솔 솜바지 저고리를 입으니 누구보다도 모양새가 나았다. 그는 두둠한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자 옹송 그려들던 어깨가 절로 펴졌다.
『그놈의 붉은 수의를 벗은 기분도 괜찮은데. 마치 석방이나 되는 것 같잖아.』
『아직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 없어?』
『어차피 막창에 내려왔으니 갈 데까지 가보는 거지 뭘.』
옷을 갈아입으며 수인들이 쑤군거렸다.
옷을 바꾸어 입고 다시 정렬을 하자, 방한모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외투 앞단추를 풀어 제친 그는 허리에 실탄 꿰미가 꽂힌 탄띠를 찼고 옆구리에는 권총집이 보였다.
『이제 너희들은 나와 함께 행동하게 될 것이다. 나의 성은 서가다. 지금부터 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목적지에 도착될 때까지 옆 사람과 사담을 나누면 안된다. 어떠한 말이라도 말을 하는 자는 가차없는 체벌을 받게 된다. 지금부터 열 명씩 네 개조로 편성한다. 편성된 조에는 임시조장을 임명할 것인즉, 꼭 필요한 문의사항은 조장을 통해 인솔대원 세 명에게 전달하면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목적지에 도착될 때까지 이탈자가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탈출을 시도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사살될 것임을 명심하도록. 만약 사살을 면하더라도 체포되면 남은 형기 두 배의 징역형에 처해질 것이다.』
작은 눈을 자주 깜박거리며 딱딱 끊어서 뱉는 강단 있는 말이었다. 서의 그 목소리는 매운 맛이 스며 조선인도 저런 독종이 있나 하고 수인들은 수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곧 조가 짜여지고 조장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석주율이 삼조 조장으로 호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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