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반군 아버지와 총부리 겨누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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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쿠데타 정국에서 과도 정부를 이끌 수라윳 쭐라논 신임 총리(右)가 취임 다음날인 2일 방콕의 한 사원을 방문해 태국 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솜뎃프라냐나삼와라 솜뎃프라상하라짜(左) 앞에서 무릎을 꿇고 국민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태국은 전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다.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태국 과도정부 총리로 1일 취임한 수라윳 쭐라논(63) 추밀원 고문의 인생 역정은 한마디로 패러독스 그 자체다. 군 출신이면서도 군의 정치 개입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자 아버지를 두고도 공산반군을 소탕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이 총리로 선택한 그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군인들을 병영으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안고 있는 현 상황 또한 패러독스다.

태국의 24대 총리가 된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치갈등을 해결하고 국민통합,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들은 이미 국가보위위원회를 설치해 과도 총리 해임권과 국회의원 250명 임명권, 헌법개정위원 2000여 명 위촉권을 차지해 민주화 초석을 마련해야 하는 수라윳의 앞날에 가시밭을 예고하고 있다.

수라윳 신임 총리는 1965년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뒤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으며, 2003년 합참의장을 끝으로 예편할 때까지 39년을 군에 몸담았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 파이욤 쭐라논 중령이 실세이던 파라스 장군에게 대항하다 숙청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이때 군인이 돼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로 결심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가 사관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공산당(CPT)에 입당해 반군 '탕 유격대'의 일원이 됐다. 초급장교 시절 그는 동북부 밀림에 배치돼 탕 유격대 소탕 작전에 참가했다. 자서전에서 그는 당시 아버지를 살해하는 환영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라윳은 성실한 군생활로 착실히 진급해 장성이 됐다. 그가 군의 정치 개입에 적극 반대하게 된 계기는 92년 5월 17일에 발발했던 군사 쿠데타. 당시 계엄군이 민간인에게 발포해 50명 이상이 숨지는 이른바 '피의 5월' 사건이 터지자 통탄하며 자신이 사령관으로 있던 특전사에 민간인에 대한 발포 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98년 육군 총사령관이 된 뒤 밀수와 부패, 정치 개입,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군을 숙정하는 작업을 충실히 수행해 정치권과 국민으로부터 '군의 신뢰를 회복시킨 장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미얀마와 관계된 각종 국경 밀수 사건에 강경 대응하는 바람에 양국 사이가 악화한 데다 수라윳의 인기가 너무 높아 탁신이 경계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3년 군복을 벗은 그는 불교사원에서 3개월 동안 승려생활을 하다 군 시절 후견인이던 전 총리 프렘 틴술라논다 추밀원 원장의 권유로 왕실자문기관인 추밀원의 고문을 맡았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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