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러시아 발행공채 청산하라"|불 소유자들 상환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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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길게는 1백년이 넘도록 상환받지 못하고 있는 제정러시아 발행공채를 소련으로부터 돌려 받자는 운동이 최근 프랑스에서 강하게 일고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급속한 경제개방으로 소련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하며 그동안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오던 제정러시아 공채를 상환받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프랑스내 러시아공채소유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프랑스 국회내 공산당을 제외한 84명의 각당 의원들로 구성된「러시아부채상환에 관한 연구그룹」은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25일 소련을 방문하는 미테랑 대통령이 고르바초프를 만날 때 이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해결을 촉구할 것을 공식 요구했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곧 창설될 유럽개발은행으로부터 소련이 돈을 빌릴 생각이라면 우선 묵은 빚부터 갚아야 할 것』이라며 러시아공채 청산문제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제정러시아말기인 1888년부터 볼셰비키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지던 1917년 사이에 러시아가 공채발행을 통해 프랑스로부터 빌려간 돈은 당시금액으로 모두 1백2O억프랑 정도.
소비에트정권 수립 이후 소련정부는 러시아공채에 대한 상환거부원칙을 공식천명, 그동안 약 25만명으로 추산되는 프랑스내 러시아공채 소유자 및 그 후손들은 이를 창고속에 처박아두고 사실상 상환에 대한 기대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련의 급속한 변혁으로 공채상환에 대한 기대가 점차 확산되면서 러시아공채는 차츰 거래가 형성되고 값도 오르는 등 채권으로서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액면가에 관계없이 공채 한장당 벼룩시장 등 중고시장에서 3프랑 (3백원) 정도에 팔리던 것이 최근 들어 25프랑(2천5백원)으로 값이 뛰었고 파리증권시장에서는 약5프랑의 시세로 정식 거래되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 과연 이 문제를 거론할지는 미지수지만 설사 거론되더라도 소련이 그런데까지 정신을 쏟을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러시아공채 소유자들은 지난86년 소련이 제정러시아가 영국에 유치시켜둔 5·5t의 금괴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영국내 러시아공채의 일부를 상환해 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길게는1백년이 지난 묵은 빚을 돌려 받는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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