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환자와 병원, ‘악어와 악어새?’

중앙일보

입력

‘나이롱환자:[nylon患者][명사]아프지도 아니한데 아픈 척하는 환자를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

사전에 나와 있는 나이롱환자의 정의다.

하지만 요즘 나이롱환자의 백태를 보면 ‘익살맞기’는 커녕 올 초 '사기죄'라는 판례에서 보듯 범죄의 한 형태일 뿐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달 자동차보험의 만성 적자와 보험사기에 대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처간의 조율이 끝나지 않아 대책 마련은 늦춰지고 있다.

결국 나이롱환자에게 지급되는 돈은 또 다른 선량한 보험 가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기 마련이며 이는 보험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터라 조속한 시일 내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나이롱환자 천태만상

서울의 한 중소병원. 일명 나이롱 환자들이 몰려든다는 이곳은 인터넷을 통해 ‘교통사고전문병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검색만 하면 우르르 쏟아지는 병원 이름들과 자세한 소개.

물론 이들 병원 중에 ‘진료전문’인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 ‘환자전문’인 경우도 상당수.

병원 앞 길 건너 치킨호프집에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술자리 중간 중간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A씨(51)는 “가끔 병원에서 자기들끼리 소리 지르고 싸우기도 한다”며 “가끔 병실에서 고스톱도 치고 그러는 모양”이라고 전했다.

과거 같은 병원에서 2주간 입원했다는 환자 B씨(28)는 “처음에는 그냥 별거 아니라 검사만 하고 통원치료를 받으려 했는데 병원 사무장의 권유로 2주간 입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 휴식이 필요한 환자들도 나이롱환자 취급을 당하는데 있다.

서울 모 병원에 입원한 C씨는 입원 후 몸이 조금 회복돼 운동도 할 겸 병원을 잠시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은 퇴원을 하라는 둥 나이롱환자 취급을 했다며 속상해 했다.

한마디로 환자와 의료진의 신뢰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환자들은 나이롱환자들의 잦은 외출과 외박, 소음 등으로 같은 병실을 쓰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입원비가 턱없이 비싼 2인실이나 1인실을 쓸 수도 없는 터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이롱환자와 병원의 ‘공생관계’

한편 지난달 손해보험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4~6월에 걸쳐 전국 676개 병·의원에 입원한 교통사고환자 3592명을 조사한 결과, 무단으로 외출이나 외박을 한 환자의 비율이 전체 17.2%인 618명에 이르렀다.

물론 부재 중인 상황을 무조건 ‘가짜환자’로 얘기하는 것은 무리지만, 실제 부재 중인 것으로 적발된 이후 바로 퇴원하거나 통원치료로 바꾼 경우가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 병원에서는 아예 무단외출을 금지하고 외출증을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보험사들에게 보이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통사고환자가 많은 일부정형외과의 경우, 외박이나 외출을 하고 싶은 환자가 나이롱환자를 적발하러 불시에 들이닥치는 보험사직원의 도착시간을 병원 사무장에게 물어보면 미리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고.

점차 지능적으로 변하는 나이롱환자들을 적발하기 위해 요즘은 보험사 직원이 한밤중에 불시에 들이닥치기도 하는 등 서로 간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의 마구잡이식 개인보험 팔아먹기로 자업자득의 결과가 아니냐며 보험사들 스스로의 구조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렇듯 일부 병원과 나이롱환자들과의 공생관계는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어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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