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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을 확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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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두 번의 일요일과 개천절마저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긴 추석 연휴가 사실상 시작되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이번 추석 연휴는 정말이지 꿀맛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정작 연휴라고 해서 제대로 쉴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사람들이 연휴임에도 제대로 된 '쉼'을 갖기 어려운 것은 여전히 마음이 분주하고 바쁘기 때문이다. "바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 '망(忙)'을 보면 '마음(心)'과 '죽음(亡)'이란 뜻이 합쳐져 있다. 결국 글자 뜻대로 보자면 바쁨은 마음을 죽이는 일이다. 분주해서 누군가를 보고 싶은 마음을 죽이는 일이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잠재울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다. 누구는 바쁜 것이 한가로운 것보다 낫다지만 이제는 너무 바쁜 것이 자칫 자신의 마음을 죽이는 자해행위일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쉼'이란 자해행위로서의 바쁨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분주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막고 마음의 생기를 되찾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쁨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된다. 흙탕물을 맑게 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뿐이다. 우리는 흙과 같고 땅과 같다. 그래서 자신의 근본 지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때로 아무것도 경작하지 않고 놀리며 내버려둬야 한다. 지칠 대로 지쳐 마음의 지력을 소진해버린 채 마음속이 뿌연 흙탕물로 가득 찬 상태라면 누구나 간절히 쉼을 바랄 것이다. 이때 진정한 쉼은 철저하게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우리에겐 바로 그 스스로를 내버려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 그리고 스트레스를 비워내야 한다. 더불어 몸의 찌꺼기, 관계의 잡동사니도 비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쉴 수 없다. 그래서 '쉼'은 곧 '빔'이다. 영혼의 회복을 원하는가? 삶의 회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비워라. 비워내지 못하면 새롭게 채울 수도 없다. 쉼은 비움을 통해 새로운 채움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숨가쁠 만큼 빠르게 달려왔던 것은 그 빠름의 속도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느림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느림을 통해 다시 한 차원 높은 가치의 창출과 전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느림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빠름의 속도는 허망해진다.

사실상 빠름 속에서는 새롭고 창조적인 생각이 잉태되기 어렵다. 느림이 있어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느림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런 느림을 우리 일상이 누리는 것조차 어느새 호사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일상 속에서 느림은 거의 실종 상태요, 고갈 그 자체다. 바로 그 느림을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진짜 '쉼'이기 때문이다.

느림을 통해 확보한 진정한 쉼이란 또 다른 의미의 생산이다. 왜냐하면 쉼을 통해 얻어진 활력이 모든 생산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생활 속에 쉼의 여백과 느림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과 쉼, 빠름과 느림의 리듬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래서 굶주렸다가 허겁지겁 먹고 탈나듯 이렇게 간만에 마주하는 긴 연휴 앞에서 사람들은 어찌할 바 몰라 하거나 너무 욕심부리다 체하기 십상이다.

이번 추석 연휴 동안이나마 바쁨을 내려놓고 근심과 걱정을 비우면서 느림의 시공간을 맘껏 누려 보자. 고향집을 찾거든 옛 오솔길을 홀로 느리게 걸어보자. 거기서 단지 상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 창조의 기운을 호흡해 보자. 그 느림의 시공간에서 한 차원 높게 상상하자. 거기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포옹하고 어제와 다른 내일을 창조적으로 잉태해 보자.

정진홍 논설위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