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욕구 수용 수위 “저울질”/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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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동당외 정당대표 진출늘듯/대남정책ㆍ정치개혁 변화전망
22일 실시되는 북한의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는 「4년마다 실시한다」는 헌법규정을 6개월 앞당겼을 뿐아니라 김일성의 권력이양설 마저 나돌아 과거 어느때보다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은 선거로 선출하는 주권기관으로 지방인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두고 있다.
해당 지역의 사업을 지도ㆍ감독하는 도ㆍ시ㆍ군 인민위원회는 후보자격으로 「해당지역 출신일 것」을 요구,지방자치단체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반면 최고인민회의는 우리나라의 국회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입법권을 갖고 있으며 헌법과 각종 법률을 개폐 또는 입안할 수 있으며 국가주석을 선출하는 등 최고의 주권기관이다.
다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는 「반드시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어 그 정치적 성격이 독특하다.
최고회의 대의원 후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선거구마다 1인만을 선정,각 지역 당위원회에 통보하고 지역 당위원회는 산하의 협동농장회의ㆍ주민회의 등에서 이들을 추천하는 형식으로 입후보자가 결정된다.
이같은 노동당의 대의원 후보지명권 행사와 「1백%투표ㆍ1백%찬성」이라는 투표관행은 대의원구성을 「당의 뜻대로」할 수 있도록 해준다.
82년도의 7기 대의원선거에서는 김정일의 후계부상이라는 당의 방침에 맞추어 김일성­김영주체제하에 선출된 제5기 대의원,5백41명 가운데 3백91명을 대거 탈락시키고 3대혁명 소조원등을 대거 등용시켜 김정일체제의 공식출범을 뒷받침했다. 후계체제를 더욱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신진들을 대거 진출시켜 김정일체제를 안정궤도에 올려놓고자하는 당의 방침이 관철됐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이처럼 대의원선거를 통해 노동당 및 노동당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일성의 차기포석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끊임없이 김일성의 권력이양 가능성이 점쳐져 왔으며 대의원선거를 계기로 공식적인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돌았고 동구사회를 강타한 변화의 물결이 북한에 영향을 미쳐 어떤 형태로든 이번 대의원선거에 반영되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은 1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즈음한 대인민 공개서한을 통해 최고통치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명백히 해 김일성이 가까운 시일내에 은퇴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8기의 대인민 공개서한과 달리 이례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복무하겠다』고 밝혀 그를 둘러싼 권력인계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부정했다.
다만 주목되는 것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인민의 욕구를 어느정도 수준으로 수용하는 「정치적 성의표시」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예견되고 있는 가능성은 노동당 이외의 정당및 사회단체 역할을 증대시켜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이해관계외에 또다른 인민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대의원 가운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더불어 조선사회민주당ㆍ천도교청우당등 야당소속 대의원과 사회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ㆍ조선농업근로자동맹ㆍ조선민주여성동맹ㆍ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등 노동당 외곽단체 소속의 대의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국원인 고령의 서철 및 당비서 허정숙의 대의원 지명 탈락,북한군전참모장 오극렬의 재부상 등이 내외신에 보도되고 있어 이러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의 페레스트로이카로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의 변화를 어떤 형태로든 소화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북에서는 이미 「인민에 대한 수령의 일방적 지도」를 개선,「수령이 당을 통해 인민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어 나름대로의 정치개혁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대의원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북의 대남정책과 대내개혁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여 선거가 끝난뒤 곧 소집될 9기1차회의에서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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