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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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종로구혜화동에 이사온지 햇수로 10년이 된다. 점심을 사먹는 샐러리맨이라면 누구에게나 절실한 「먹거리」문제-. 순간을 지나치면 곧 잊어버리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즐거운 시간이었느냐, 괴로운 시간이었느냐하는 점심 문제는 자못 심각할수도 있다.
작년부터 다행히 극단 근처에 깔끔한 「손칼국수」((764)7947)집이 문을 열었다.
서예가 이철경의 글씨체로 깨끗하게 「손칼국수」라고 써붙인 수수한 이 집은 낮에만 문을 열고 저녁엔 본래의 가정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음식점이다.
이 집의 메인 디시는 칼국수로 한그릇에 2천원.
그리고 애들 방학때는 만두국이 준비되고, 안주감으로 수육(7천원)과 간전(5천원), 그리고 빈대떡(3천원)이 고작이다.
요즈음은 낮12시만 조금 넘으면 발디딜 자리가 없을 지경이지만 6개월 전까지만해도 이곳은 그야말로 오붓한 점심식사집이었다. 아주 담박한 이 손칼국수는 「홈메이드」답게 세련미가 적고, 짜지않은 국물에 국수발이 담기고 그위에 잘게 썬 고기 몇점에 호박나물이 얹혀있다.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흠뻑 붉은빛을 띠었고 매운맛과 새콤한 맛이 잘도 어울렸다.
낮술은 금물이겠지만 굳이 금기를 깨고 싶으면 인삼주를 한잔 청할수도 있다. 처음엔 방 세개로 넓지 않은 공간이 그대로 여염집의 사사로운 점심터였으나 이젠 부부의 안방도 제공되고 겨우내 비워두는 창고같은 방도 내놓지 않으면 안될만큼 번창하고 있다.
일생에 한사람의 「벗」이라도 있다면 그는 행복한 인생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언제나 맘에 드는 단골집이 있다는 것을 때때로 깨닫는것도 정녕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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