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은 지금 '특별한 마사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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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 말고 다른 서비스를 찾는 손님이 많아서 간판을 바꿨어요. 서로 무안한 것도 한두 번이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2년째 스포츠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명화(가명.41)씨는 얼마전 매장 간판에 '건전숍'이라는 설명을 써 넣었다. 송씨는 "서비스 막바지에 '유사성행위는 왜 빼냐'고 묻는 손님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했다. 최근 신림동 고시촌 일대에 '스포츠 마사지'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유사성행위 업소가 무차별 확산되면서 '정말 마사지만 하는 업소'가 생존을 위해 따로 광고를 해야하는 촌극이 벌이지고 있다.

◇'특별한 마사지 숍' 급증= 서울 관악구 신림9동. 각종 고시학원과 독서실 등이 밀집해 일명 '고시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 지역에는 최근 1~2년 사이 소위 '대딸방'으로 통하는 유사성행위업소가 급격히 늘어 현재 20여개가 성업중이다. 로스쿨 도입 얘기가 나온 후 고시생들이 빠져나가면서 일대 상가들이 줄줄이 매물로 나오는 모습과는 대조된다.

관악구가 조사한 관내 개인사업장 수는 2년 연속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스포츠 마사지 업소 수는 2004년( 50개)보다 2005년말(70개)기준으로 40% 이상 늘었다. 새로 문을 여는 마사지 업소 대부분은 신림동 고시촌에 자리잡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 부동산 업자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요즘 개업하는 고시촌 일대 스포츠 마사지 업소들은 유사성행위를 서비스 한다"고 말한다.

◇한 건물에 法과 性간판='스포츠 마사지'라는 간판을 내건 유사성행위 업소들은 고시 학원과 독서실이 몰려있는 법학원 사거리 반경 500m이내에 집중돼있다. 부근 건물마다 업소가 하나씩 들어서 있다. 같은 건물 2층에는 고시 학원이 3층에는 유사성행위 업소가 입주하기도 했다. 이들 업소는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저녁식사 시간에 경쟁적인 호객 행위를 벌인다.

보통 젊은 여성 둘에 건장한 남성 하나가 한 조로 움직이며 주요 길목에 자리를 잡고 홍보 카드를 나눠준다. 오후 7시를 전후해 거리에는 '신개념 여대생 마사지', 'OO대 여대생들이 당신의 스트레스를 풀어드립니다' 등 자극적인 문구를 담은 홍보물이 쏟아진다. '예약 필수'라는 말도 적혀있다. 불과 며칠 전 새로 문을 열었다며 '5000원 할인쿠폰'을 나눠주는 신생 업소도 눈에 띈다.

지능적인 업소들도 등장했다. '스포츠 마사지'라는 업태설명을 빼고 상호만 쓴 간판을 내건 업소들이 생겼다. 유사성행위 업소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될 것을 우려해서다.

간판만 봐서는 무슨 업소인지 알 수 없다. 홍보는 전단지와 입소문으로 대신한다. 성행위가 가능한 곳도 있다. 고시생 유모(26)씨는 "강추 업소로 불리는 곳이 있다"며 "성행위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외로워서"=신림동 고시촌은 대표적인 남초(男超)지역이다. 자취생을 비롯 전국에서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모여든다. 근래에는 7급이상 공무원 시험이나 의대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고시촌을 찾는다. 학생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업소를 찾은 경험이 있는 고시생들은 "일시적으로 성욕을 풀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스트레스가 이런 업소를 찾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고시생 최모(27)씨는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남학생들끼리는 그런 데 가는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책장 넘기는 소리만 커도 바로 조용히 하라는 메모가 날아오는 고시원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공부해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며 "강제로 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여자친구 만나고 싶은 마음, 살벌한 경쟁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을 해소할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데이트하면서 쓰는 돈에 비하면 업소에서 쓰는 6만원은 결코 많지 않다"고 했다.

◇냉가슴 앓는 주민들=고시촌을 잠식하는 변종 성상품이 늘어나면서 주민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 주민들 상당수는 상가나 원룸 등을 지어 월세 수입으로 산다. 경기 침체로 공실률이 늘면서 시름이 깊던 이들은 한개 층 전체를 얻어 쓰는 마사지 숍의 등장에 처음에는 반색했다. 그러나 업소의 실체를 알고나선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같은 건물의 독서실·법학원 등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

법적 계약을 맺은데다 조직폭력배 등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 때문에 섣불리 나가라고 말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업소의 실체를 알고 나서도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상가를 내주기도 한다. 신림9동에서 16년 째 살았다는 남현욱(48)씨는 "학생들 공부한다고 차량 경적도 못 울리게 하던 동네가 언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voi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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