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정원사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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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원사 새(bowerbird)가 집을 짓는 방식은 독특하다. 마른 풀을 둥글게 엮은 뒤 장식을 한다. 열매.나뭇잎.꽃이나 무지갯빛 풍뎅이 날개, 아름다운 빛깔의 돌, 조개껍데기… 심지어 플라스틱 조각까지 단다. 딸기즙으로 벽을 칠하고, 장식물이 시들면 바꿔주기도 한다. 집을 보고 수컷을 고르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원사 새는 집(bower)을 장식할 때 분수를 지킨다. 엄격하게 정해진 서열을 뛰어넘어 화려하게 꾸밀 수 없다. 서열이 높은 새보다 더 멋을 내면 다른 새들이 날아와 부숴버린다. 장식도 다 뺏긴다.

사람의 집도 분수가 있다. 옛날에는 왕이 아니면 99간이 넘는 집에서는 살지 못했다. 단종 때 충청도의 김미는 109간 집을 지어 사치했다는 이유로 집을 허물고, 몰수당했다. 신라 이후 모든 왕조가 신분에 따라 집 크기를 제한했다. 조선조에는 대군은 60간, 왕족은 50간, 2품 이상은 40간, 3품 이하는 30간, 그리고 서인은 10간을 넘지 못하게 했다. 규정 이상으로 크고 높게 지은 집을 찾아내 기둥을 잘라 납작하게 만드는 '납작 별감'까지 있었다. 그러나 부엌과 외양간 등 부속건물로 눈속임하거나 가운데 문을 막아 두 개의 다른 집인 양 속이는 일도 있어 단속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위 관료들의 분에 넘치는 고급주택을 엄히 단속했다. 호화주택을 지은 기업인을 구속한 일도 있다. 세금을 낸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반 서민이 살 땅을 넓게 독점하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다. 이때까지 규제 대상은 극소수 고위층.부유층의 호화주택이었다.

요즘은 시가 6억원이 넘으면 고가(호화)주택이다. 아파트로 치면 서울에서 5명 중 한 명, 수도권에서 10명 중 한 명이 호화주택에 사는 셈이다. 강남에선 부모님을 모시기조차 어려운 20평대도 포함된다. 그러니 납작 별감이 허물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팔고 이사하려면 세금폭탄을 맞고 더 작은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월급쟁이 주제에 강남에 사느냐며 정원사 새 왕초가 쪼아 대는 것 같다. 그럼 누가 그 자리에 와 살게 될까.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며칠 전 관훈토론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려 해도 더 작은 집으로 옮겨야 하는 1주택 장기거주자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정원사 새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계급장을 떼고 붙는 수밖에 없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