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의1(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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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도시바사 회장이 외국 기업인 몇사람을 공장으로 안내했다. 몇겹의 문을 열고 막 생산현장에 접근하려는데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회장님,더이상은 안됩니다.』
일행은 당황했다. 회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다. 직반장이라고 했다. 직반장이라면 생산라인 최일선의 책임자다. 회장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더이상 생산현장에 가까이 가면 기술자들이 한눈을 팝니다. 그래서 분심이 생기면 결함품이 나옵니다. 우리는 회장님을 위해서 보다는 소비자들을 위해 일합니다. 회장님도 지난 정초에 제품의 결함률을 제로로 줄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도시바는 일본의 유수한 전자회사가운데 하나다. 역시 일본의 유력한 전자회사인 NEC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구마모토 공장에서 만드는 반도체는 다른 공장에 비해 결함률이 3배나 높았다. 공장간부들은 자나깨나 그 원인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었다. 어느날 한 여직원이 그것을 알아냈다. 출근길에 공장근처의 건널목에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여직원은 진동이 심한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범인은 바로 그 진동이었다. 공장은 진동완충장치를 서둘렀다. 정말 결함률은 놀라게 줄어들었다. 불과 18세 소녀의 아이디어였다.
바로 그 일본에 비해 한국의 기술개발능력은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요즘 우리 과학기술처가 펴낸 통계예측자료에서 밝혀졌다.
미국의 기술개발능력을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은 61,서독은 38,영국과 프랑스는 20,우리나라는 4.9라는 것이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도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단계가 일본의 1966년 수준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자그마치 4반세기의 격차다.
정부는 우리의 과학기술능력을 오는 90년대 중반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으로,90년대말엔 G7(선진 7개국)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 목표에 접근하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짐작이 간다.
「위로부터의 발상전환」은 물론이고 「아래로부터의 의식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떠오르는 별』이니,『솟아오르는 용』이니,하는 외국사람들의 칭찬에 몽롱해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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