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상담까지하는 대치동 학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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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은 이제 학습지도뿐만 아니라 진로, 인생 상담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학 입시 제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직업이 다양화하면서 학교에서 사실상 진로와 인생 상담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첨단 분석 기술과 전문 인력을 앞세운 사설 업체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특히 상담 한번에 수십만 원을 받는 전문 업체가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 '돈이 합격을 낳는다'는 현실이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한 교육 컨설팅 업체.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진 상담실에서 한 학생(고 2)에 대한 진로 상담이 한창이다. 테이블에는 학생의 가정 환경과 적성, 학교 성적 등을 분석한 70쪽 분량의 리포트가 놓여 있다.

의사를 희망하는 학생과 부모에게 상담가는 "대인 관계 능력이 떨어지고 성실성이 모자라 수련의 과정 등 오래 공부하기 힘들 것"이라며 "변리사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까지 골라 주었다. 학생 부모는 1주일에 한 번 씩 총 4번 면담 비용으로 70만 원을 냈지만 아깝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 업체 회원은 2년 만에 900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부유층 집안 학생들이다. 이곳에는 교육 전문가, 전직 경영 컨설턴트, 심리 분석가 등 20여 명이 학생을 낱낱이 해부한다. 자체 개발한 성향 분석 검사 등 3, 4개 정밀 검사를 하고 집중 면담을 거친 후 학생에게 맞는 직업, 대학, 학과를 판정한다. 국내 대학뿐 아니라 외국 대학도 대상이다.

업체 관계자는 "부모의 동산.부동산 규모, 직장과 직위까지 분석에 반영한다"며 "일부 학부모는 분석 결과에 감탄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강남 학원가에는'학습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집중 관리해주는 업체 수십 곳도 성행중이다. 여기서는 한 달에 수십 만원씩 받고 이성 문제를 비롯한 교우 관계, 부모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까지 챙겨주고 있다.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그것도 30분 정도 상담하는 게 고작"이라며 "입시 제도와 직업은 다양해 지는데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 학교 교사들은 진로.인생 상담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남 A여고의 한 담임교사는 "과거에는 판정표 하나만 잘 짜면 그 해 입시 지도는 끝이었다"며 "대학마다 입시가 다르고 1년에도 몇 차례씩 신입생을 뽑으니 버겁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몇 안 되는 상담교사와 담임교사로는 꼼꼼한 상담이 불가능해 아예 손을 놓는 학교도 여럿 있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이들 상담 전문 업체가 대부분 고액을 받는 데 있다. 결국, 학교에 의존해야 하는 '없는 집'학생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한 컨설턴트는 "실력이 비슷해도 어떻게 관리를 받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달라지는 세상"이라며 "부모가 부자일수록 합격률을 높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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