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끼리 비방전 이적·자해 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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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향해 '경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강 대표는 7일 "당 인터넷 홈페이지는 깨끗이 정리됐느냐"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 자신이 내린 지시를 확인한 것이다.

그는 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유력 대선 후보 지지자들의 비방전으로 당 홈페이지가 도배질되고 있다"며 "한나라당 당원들이 저질 흑색 비방전에 가담하고 있다면 누워서 침 뱉는 자해 행위이자 이적 행위"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자들이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벌이고 있는 비난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강 대표는 "호루라기를 잘 부는 공정한 심판형 대표가 되겠다고 했는데…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 말씀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좀 더 노골적이었다. 그는 "대선 주자들이 눈감고 넘어가선 안 된다"며 "이런 일이 중단되도록 지지자들의 주변을 철저하게 관리해 주셔야, 그것이 당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거들었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당원들이 개입됐다면 해당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 당 윤리위원회에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강 대표의 발언은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박.이 두 후보 지지층의 '사이버 난투극'은 대선 후보 경쟁이 조기에 과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수첩공주'(박 전 대표), '노가다'(이 전 시장) 등 두 사람을 겨냥한 막말들은 한나라당 지지층을 분열시키고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최근 대구.경북 지역을 앞다퉈 방문해 '박정희 이미지' 선점을 위한 신경전까지 벌였다.<본지 9월 6일자 6면>

전시작전통제권 단독 행사 등 현안에 대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언론 접촉 빈도가 잦아지면서 한나라당의 입지는 왜소해졌다.

강 대표의 측근 의원은 "당내 대선 후보들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공정한 경선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강 대표의 소신"이라며 "이날 발언은 두 후보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대선 후보들의 경쟁은 내년부터이고, 올해는 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 왔다. 대선 경쟁이 빨라질수록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당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고, 공정한 심판관을 자청한 자신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걱정인 셈이다. 강 대표는 조만간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을 따로 만나 당 운영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 강 대표 취임 뒤 당 지지율 하락=강 대표는 "요란하지는 않지만 할 일은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취임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외연 확대와 당 개혁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표 참조>

당 이미지 변신을 위한 솔선수범 차원에서 취미인 골프(80대 중반대 실력)도 4개월째 끊고 있다. 그는 "치고 싶은 마음이 들까봐 골프채를 창고 속에 집어던졌고, 즐겨 보던 케이블 TV 골프 프로그램은 아예 켜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관리형 대표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일부 조사에선 10%포인트가 빠지는 등 그가 대표가 된 뒤 당 지지율도 하락세다.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6일 국회에선 '한나라당의 집권, 과연 확실한가'란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자인 김형준 국민대 교수는 "강 대표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는 등 강 대표 체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강 대표는 당내 비주류와 소장 개혁세력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지적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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