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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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큰 아이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작은애와 미장원에 들렀다.
큰 아이는 나이에 비해 약해서 어려 보이고 작은 아이는 그와 반대다.
큰아이의 머리를 갈라주면서 미용사 아가씨는 작은 아이를 보고 물었다.
『너 몇살이지?』
손가락을 셋 편다.
그러자 큰 아이는 머리를 자르다 말고 동생 손을 제치며『아니야, 너 이제 네 살이잖아』한다.
미용사 아가씨는 믿어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한다.
『생일이 언제인데 애가 이렇게 숙성해요?』
그 말에 『아차, 실수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휴다, 설날이다 해서 손님접대하고 또 생활에 바쁘다보니 아이의 생일을 깜박 잊고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닌가.
집에 와 생각하니 작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얼마 전 옆집형아 생일이라며 케이크를 먹고 와서는 『엄마 내 생일은 몇 밤 자야 돼 ? 』해서 가르쳐 줬더니 생일까지의 달력글자마다 모조리 빨갛게 동그라미를 쳐놓았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이튿날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놓고 『유석아, 오늘이 네 생일이야. 축하한다』면서 박수를 쳐주었더니 식탁을 둘러본 아이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밥 안먹고 나 생일만 먹을거야』하며 떼를 쓰는게 아닌가.
그 아이에겐 언제부터인가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고 해야 생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시루떡을 해놓고 삼신할매께 비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요즈음 생일만 맞으면 케이크를 자르는게 당연한 줄 아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벌써 이렇게 자랐구나하는 대견함보다 내 아이들 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는 섭섭함이 앞선다.
요즈음 엄마의 너무 큰 욕심일까.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신현대아파트 7동10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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