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변칙 세일」 무죄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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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정거래법 위반되나 사기죄는 성립 안된다”/서울 유명 6곳 간부 6명에
지난해 1월 백화점 속임수바겐세일사건과 관련,사기혐의로 구속기소된 뒤 보석으로 풀려난 시내 유명 6개백화점 간부 6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형사지법 9단독 이태운판사는 19일 롯데백화점 숙녀의류부장 안영찬피고인(43) 등 6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들 백화점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사실은 명백하나 피고인들을 형법상 사기죄의 주체로 볼수 없으며 변칙세일 자체가 정당한 상행위는 아니나 이를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기망행위로는 볼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백화점 특정매장의 수입증대가 수수료수입과 직결되는 관계로 제조원가의 3∼4배 가격을 매겨 이를 할인하는 수법으로 변칙세일하고 과장광고하는 등 그 사회적 비난 가능성과 처벌의 필요성은 크나 공정거래법 규정상 경제기획원장관의 고발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를 처벌할 법적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무죄선고에 불복,항소할 뜻을 밝혔으며 이날 선고에 앞서 헌법에 보장된 범죄피해자의 진술권보장 등을 이유로 변론재개신청을 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피고인 등은 법정 정기바겐세일기간인 90일을 초과해 3백51일(롯데)∼2백32일(한양유통)씩 가격을 조작,바겐세일을 하면서 6억4천4백만원(롯데)∼2억6천만원(한양유통)까지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지난해 2월9일 구속기소된뒤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지난해 9월20일 징역 1년6월씩의 실형을 구형받았었다.
관련 피고인은 다음과 같다.
▲안영찬(롯데) ▲홍사영(46ㆍ현대) ▲신기숙(39ㆍ신세계) ▲안창렬(54ㆍ뉴코아) ▲이수길(42ㆍ미도파) ▲이희봉(44ㆍ한양유통)
◎「백화점 변칙세일」 무죄 선고의 뜻/“입점업체 자율결정 백화점 무관”/기획원서 고발 없어 「유감」표시도
지난해초 소비자단체가 고발한 서울시내 6개 유명백화점의 「숙녀의류 변칙바겐세일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 판결이 백화점 상거래행위에 대한 최초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판결은 현재 검찰에서 진행중인 한우쇠고기 속임수판매 수사에도 영향을 미쳐 검찰이 사기혐의 입증 및 보강수사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판부는 문제된 변칙세일 내용 및 과정을 살펴볼때 백화점의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에만 해당하지 않을 뿐이지 공정거래법상으로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번 무죄가 백화점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백화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가능성 및 처벌 필요성이라는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재판부는 백화점의 거래관행을 토대로 ▲피고인들이 사기죄의 범행주체인지 여부 ▲세일행위 및 광고의 기망행위 여부 ▲소비자가 기망행위로 착오에 빠져 재산처분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살폈다.
백화점의 영업형태는 직영ㆍ임대ㆍ수주매장의 세가지로 이번에 문제된 것은 수주매장에서 이뤄진 상거래형태.
수주매장이란 입점업체가 매상을 올리면 일정비율 수수료를 백화점측에 지불하는 형태로 바겐세일은 1차적으로 해당업체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백화점측과 서로 짜고 가격이나 할인율을 정하는 등의 담합행위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의류는 고객 취향ㆍ유행ㆍ계절감각을 민감히 반영,최초의 출하품부터 제조원가의 3.5배가량이나 높은 수준에서 정상가격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
따라서 바겐세일 형태로 가격을 30∼50%로 낮추더라도 마진이 남기 때문에 아예 제품출하때부터 바겐세일을 겨냥해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
즉 소규모 의류업체는 소비자가 고가품이나 세일을 선호한다는 심리를 이용해 입점업체 단독으로 할인판매하고 할인율을 결정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아래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백화점의 중간관리자들로서 입점업체와 짜고 공모공동범행한 증거가 없고 개인이익을 취할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기의 주체가 안된다고 판결했다. 또 자본주의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상품의 절대가격은 없고 수요ㆍ공급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므로 사회 상규상 용인범위 안에서 업체가 판매가격과 할인율을 자율적으로 정한 것은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설령 이들이 기망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소비자는 바겐세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을 사는 것은 아니며 구매성향에 따라 품질을 고려,제품을 사는 것이므로 이번 사건의 경우 소비자가 기망에 의한 착오로 제품을 산 것으로 볼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 백화점의 변칙 바겐세일 및 과대광고가 공정거래법 15조에 위반돼 1년이하 징역이나 7천만원이하 벌금에 처할수 있는 범죄임에도 이 죄가 경제기획원장관의 고발을 필요로 하는데도 고발이 없어 처벌하지 못한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와관련,검찰수사단계에서 서울지검장이 경제기획원에 공정거래법 위반혐의고발을 요청했으나 경제기획원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시정 및 사과광고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고발하지 않았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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