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거세질 「정치바람」(거대신당: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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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사 중립성 흔들릴까 걱정/정파간 이해 갈리면 「긴장」 부를수도
민정­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의 출현은 정계뿐 아니라 행정부에도 단기적으로든,장기적으로든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어 공직사회가 어떻게 변모하게 될지가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우선 오는 5월로 민자당이 정식 출범한 뒤 곧바로 단행될 대대적인 내각개편에서 구 야당계인 민주ㆍ공화의원을 포함,당쪽에서 9∼10명의 의원들이 입각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내각책임제에 대비해 내각을 이에 준해 시험 운영해본다는 설도 나돌아 공무원 조직의 일시적 동요는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직업공무원제도가 아직까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던 정치장관의 대거 입각은 자신들의 신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직사회 내부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각제가 도입될 경우 국회의원이 아니면 장관을 하기 어렵다는 승진상의 제약이 고위공직자의 사기저하와 허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주요 인사 때마다 이들 정치장관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 앞으로의 상황이 직업공무원들에게는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들이 팽배해 있다.
노태우대통령이 각 부처 업무보고 때마다 공직사회 기강확립을 이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이나 강영훈국무총리가 국무회의및 국무위원 간담회를 통해 『정계개편으로 흔들리고 있는 일부 공직자들의 기강 확립에 각별히 유념하라』고 특별 주문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또 거대신당의 출현으로 어느 때보다 당쪽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어 행정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직업공무원들의 동요와 우려를 확산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개헌선을 뛰어넘는 민자당의 등장은 지금까지 여소야대의 불안정한 구도를 단숨에 뒤바꿔 행정부의 거대한 후원세력이 됐지만 반면 정치가 행정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간여의 범위는 이전에 비해 훨씬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정책을 입안,시행 하는데 있어 행정부가 당의 직ㆍ간접적인 통제와 지배하에 움직일 수 밖에 없어 행정부의 독립성 유지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일부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반적인 우려와 동요와는 달리 실제로는 공무원 사회를 더욱 안정시키고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겠다는 것이 노대통령을 비롯,이번 정계개편을 주도한 핵심 참모들의 기본 구도인 것 같다.
이들은 일본 자민당하에서의 행정부를 모델로 삼아 일본처럼 직업공무원제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직업공무원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을 위해 중앙인사 행정기관인 인사원을 독립적으로 운영,공무원 인사에 관한 규정과 지침을 각의의 의결없이 자체적으로 제정ㆍ시행하여 정치적 입김을 배제하고 있다.
또 사무차관제를 도입해 정책의 수립ㆍ집행은 물론 예산집행 등 모든 행정업무를 직업공무원 계선인 사무차관ㆍ국장ㆍ과장ㆍ계장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해 장관이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하위직 공무원의 동요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직업공무원제의 확립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인 것 같다.
따라서 행정부내에서는 내막적으로 내각제 개헌 이전이라 하더라도 인사원과 유사한 성격의 인사협의체를 운영하고 공무원의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공무원의 신규 임용시에 정치적 중립선서를 하는 등의 보완조치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장관의 입각에 대비,장관의 권한을 차관 이하로 대폭 이양시켜 행정의 독자성과 전문화를 유지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임기중에는 대통령중심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일부 부처에 한해 의원겸직 정치장관을 입각시켜 내각제를 대비한 제도적인 보완을 점진적으로 해나가자는 계획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행정부를 장악하는 힘이 결코 느슨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노대통령은 내각의 운영을 당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면 정부의 권한도 예전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당정간의 협조체제에 있어서는 과거 민정당이라는 단일여당 때와는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정파간의 이해가 맞물려 당과 행정부간에 긴장감이 조성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당정간에 의견이 상충될 때마다 「전문성」이란 한계에 부딪쳐 당이 행정부에 밀릴 수 밖에 없었던 점에 비추어 이런 갈등은 무난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오히려 거대여당의 뒷받침을 받게 된 노정부는 최대 취약점인 리더십의 약화를 극복,「강한 정부」 「힘있는 정부」로 일대변신을 하게 되리라는 「낙관론」도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풍토가 일본과는 달리 지나치게 정치우위였던 점으로 볼 때 거센 정치바람을 과연 행정부가 맞서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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