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성씨<영화사 황기성사단 대표>|″우리영화도 이젠 설자리 찾아 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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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는 날마다 일어섭니다.』
대뜸 던지는 첫 마디가 엉뚱했다.
뛰어난 영화기획 전문가로「황기성사단」이란 영화사를 꾸려 가는 황기성씨(51).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영화사 이름에「사단」이란 용어를 썼다.
『요즘 만드는 영화의 제목입니다. 고학력 실업문제를 다루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날마다 일어선다」는 게 한국 영화계의 몸짓 같아요.』
자신의 「90년을 뛰는」계획보다 영화계의 당면문제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미국영화직배도 그렇지요. 이건 헤비급과 플라이급(한국영화)의 싸움이에요. 그러니 미들급 정도로 체질이 강화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황씨는 5·16이후의 한국영화계를 안팎곱사로 비유했다.
『영화는 정치환경에 민감한 산업입니다.
영상이 갖는 강력한 설득력 때문에 정부는 걸핏하면 소재제한을 능사로 삼았어요. 여기에 외화에 비해 자본도 영세하고 기술도 뒤떨어지니 관객이등을 돌릴 수 밖에요. 당대의 현실을 못 보여 주는 영화는 이미 영화가 아닙니다.』
직배문제는 과거 정부가 영화계에 끼친 불이익을 배상한 다음, 다시 말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보호한 다음 해야 형평에 맞다는게 황씨의 주장이다.
94년부터 현재의 편당 프린트제한이 풀리고 스크린 쿼타마저 무너지면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신진그룹들의 왕성한 의욕이나 정부의 전향적 자세 등을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우선 정부차원에서 영화를 내수산업이 아닌 수출산업으로 육성해낼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대자본의 영화계 유치가 긴급하고 젊은 인재를 해외연수 등을 통해 적극 양성해야지요. 그리고 관객들도 제작과정부터 참여한다는 애정이 그립습니다.』
63년 신필름 기획담당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딘 후 기획의 길만을 걸어온 황씨가 올해 계획중인 작품은『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2부』와『왜 싸워』『달맞이 꽃』『누나야 빛을 따라 가거라』등.
『행복은…』는 황씨가 지난해 만든 같은 제목의 2부로 과중한 입시부담에 짓눌린 청소년들의 고민을 사실 그대로 그리게 된다.
『왜 싸워』는 국가적 고질로 심화돼 가는 영·호남지역감정을 영화로서는 처음 정면 취급케 된다.
결말을 화합운운으로 끝내는 단순한 계몽차원이 아닌 70년대 이후 영·호남의 지역문제가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어느 남녀의 파국과정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낼 작정이다.
『달맞이 꽃』은 참교육을 주제로 한 교육현실을 다루고 『누나야…』는 핵가족사회의 무너져 가는 가족윤리를 그릴 예정.
85년「황기성사단」을 차려 첫 작품『어미』로 그해 대종상작품상을 탄 황씨는 그 동안 고집스레 첨예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제작에만 몰두해 왔다.
『어미』는 인신매매,『안개기둥』『성공시대』는 산업사회의 인간성 상실,『접시꽃 당신』은 지순한 애정윤리, 그리고 『행복은…』는 입시지옥을 다뤘고 이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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