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왜 ‘8字’ 를 좋아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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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베이징(北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 시간을 2008년 8월 8일 오전 8시8분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얼핏 보기에 유치한 숫자 장난 같다. 하지만 이는 중국인의 미신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사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중국어는 대표적인 표의(表意)문자로 한 가지 발음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인들은 특히 숫자에 고도의 상징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특정 숫자가 생활 각 영역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 중국인의 숫자 8(八)에 대한 애착은 과히 광적이다. 숫자 八의 중국어 발음은 ‘바’로 ‘돈을 벌다’는 ‘발재(發財)’의 ‘발’과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이재(理財)에 밝은 중국인들에게 있어 八은 부자가 되는 보증수표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八이 들어가는 전화번호·자동차번호는 일반 번호보다 수 배에서 수백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 몇 년 전 쓰촨성 청두시에서 실업자 지원기금 마련을 위해 실시한 전화번호 경매에서 ‘888-8888’은 무려 한화 3억원 가량에 낙찰됐다. 이상해 보이지만 중국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반면 숫자 4(四)의 발음은 ‘죽다(死)’와 동일해 수학계산을 제외한 일상생활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베이징 등 일부 대도시에서는 일반 시민의 반발을 고려해 자동차 번호 뒷자리에 四를 사용하지 않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四층은 3A층으로 바꿔 사용해 배달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숫자 7(七)은 페인트 ‘칠(漆)’과 비슷해 페인트 회사에서 선호하는 숫자다. 광둥성에 있는 한 페인트 회사의 전화번호는 숫자 七로만 채워져 있을 정도다. 숫자 6(六)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뜻의 ‘류(流)’와 비슷하기 때문에 중국인이 선호하는 숫자이고, 9(九)는 하늘을 상징하며 과거 황제의 의미로도 쓰였다.

오늘날 숫자 9(九)는 결혼식 날짜에 많이 사용되며, 九의 발음이 ‘영구하다(久)’와 같기 때문에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영원한 동반자이기를 바라는 신혼부부들이 특히 이 숫자를 선호한다. 숫자 10(十) 또한 좋은 숫자로 인식돼 중국에서는 十을 단위로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전설과 관련해 중국인이 기피하는 날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7월 7일 칠석(七夕)이다. 이날에는 혼례를 올리지 않는 것이 중국 대다수 지역의 관습으로 돼 있는데, 비록 헤어져 있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날 이후 1년간 헤어져 있어야 하는 비극적인 의미가 담긴 날이기 때문이다.

중국어의 특징과 관련한 미신 관념은 사회적 전통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에서 노인에게 시계를 선물하면 욕을 먹는다. 시계를 나타내는 ‘종(鐘)’과 죽음을 나타내는 ‘종(終)’의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남녀관계나 친구 간에는 우산과 배를 선물하지 않는다.

이 또한 우산을 나타내는 ‘산(傘)’이 이별을 나타내는 ‘산(散)’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배를 나타내는 ‘이(梨)’가 이별을 나타내는 ‘이(離)’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에 아이들이 그릇을 깨뜨려도 이날만은 꾸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깨뜨리다(碎)’의 발음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歲歲平安)’의 ‘세(歲)’ 발음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물결로 인해 이와 같은 미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중국인이 점차 늘고 있긴 하지만, 마땅한 종교를 가지지 않은 중국인에게는 여전히 미신이 하나의 민간신앙으로 생활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8자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시장이나 백화점의 진열상품 가격표시에서도 88위안, 888위안 등 ‘8’자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시간이 대표적 예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이다. 전세계 다국적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은 보다 심화하고, 제품 간 품질 차이도 줄어들고 있다. 즉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할 때가 왔다. 중국인의 생활문화를 잘 이해하고 이를 기업 상담과 마케팅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중국 소비시장 공략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지 않을까?

홍창표 KOTRA 베이징무역관 차장 cphong@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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