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피난처들 된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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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낮은 세율과 엄격한 비밀보장으로 지구촌 여유자금을 빨아들이던 '세금 피난처(tax haven)'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인터넷판은 22일 전 세계의 대표적인 조세피난처 6곳의 현재 상황을 소개하며 이들의 상당수가 국제적 압력 앞에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검은돈'과의 전쟁으로까지 확대한 것이 결정타였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0년 35곳에 달하는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를 작성, 이들 중 30곳에서 세금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현재 전 세계 세금 천국에 도피해 있는 자금은 11조5000억 달러로 미 연방정부 예산의 4배가 넘는다.

◆ 케이맨 군도=미국에 인접해 있는 덕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세 피난처가 됐다. 약 5000개의 투자펀드와 400개의 은행, 4만 개의 기업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은행 자산만 8000억 달러로 뉴욕 다음인 세계 5위 규모의 금융센터다. 기업이 원하면 100년간 '무세금' 보장도 해준다. 하지만 엔론사 회계부정 사건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서둘러 미국.유럽과 정보공유 협정을 맺었다.

◆ 키프로스=러시아 신흥재벌들이 단골손님이다. 5만 명의 러시아인이 상주하며 1만4000개 등록 기업의 대부분이 러시아인 소유다. 은행 자산은 약 300억 달러. 하지만 그리스계 자치지역인 남부지역이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4.25%에 불과하던 법인세율이 최근 10~15%로 오르자 러시아 자금이 줄이어 탈출하고 있다.

◆ 아일랜드=1960년대부터 창작물 저작권료에 면세혜택을 줘 작가.음악가 등 고소득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다. 영국의 록밴드 데프 레파드 등이 대표적인 '세금 이민자'들이다. 제품개발 부문을 이곳으로 옮긴 마이크로소프트(MS)도 그간 수십억 달러의 '절세'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 라이베리아=선박에 대한 낮은 세금과 느슨한 안전규정으로 전 세계 배들의 선적 등록지로 각광받아 왔다. 이런 '편의치적'서비스로 라이베리아 선적을 얻은 선박이 2만1000여 척으로 세계 둘째 규모다.

◆ 리히텐슈타인=금융비밀을 엄격히 보호하는 전통으로 마피아, 중남미 마약공급상, 독재자들의 자금이 몰리는 곳이다. 한때 사담 후세인의 비자금 금고도 있었다. 9.11 이후 미국의 압력으로 사법공조 조약을 맺었다.

◆ 모나코=눈부신 해변과 카지노로 유명한 휴양지답게 유명 영화배우, 최고경영자(CEO)들이 애용한다.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하지만 은행계좌 수는 35만 개에 이른다. EU로부터 '비협조국'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명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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