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위에 선 「관료행정」(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4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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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장독선… “싫으면 그만둬라”/상급기관 쓸데없는 「비전문적 간섭」도 여전
우리나라의 학교행정은 어디에 서 있는가.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본연의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부차적 기능인 학교행정이 오히려 본연의 업무에까지 군림하며 위축시키고 있다.
순기능보다 통제ㆍ관리기능으로 굳어져 교육활동이 자율성ㆍ다양성ㆍ창의성을 잃고 타율성ㆍ획일성ㆍ타성에 젖어들게 하는 역기능으로 흐르는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교조가 내건 슬로건 가운데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인 교육행정체계의 타파」는 일반교사들로부터 그 어느 것보다도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부분이었다. 『학교조직에서는 교장 한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주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교장의 명이 떨어지면 모든 교사들은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할 뿐 감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하기란 힘듭니다. 따라서 조직이 경직될 수밖에 없지요.』
인천C중의 최모교사(32)는 학교행정을 교장 단독으로 좌지우지하도록 된 현행제도가 문제라고 꼬집으며 『만약 교장이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 경우 그 피해는 심각하다』고 했다.
전교조파동 이후 한때 경직성이 풀리는 듯했으나 당국의 해직등 강경조치가 뒤따르면서 역기능이 여전해 일선교사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교장 개인의 성향에 학교 전체가 맞춰나가야 합니다. 지난해 1학기 서울S고에 있을 때 유난히 청결을 강조하는 교장이 새로 부임해왔어요. 전교생을 매일 오전 7시에 등교시켜 학교 주변을 샅샅이 청소토록 하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불쑥 교실로 들어와 학생들의 손톱ㆍ발톱검사도 했지요. 몇몇 교사들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반발했다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호통을 들었습니다.』 서울K고 김모교사(35)의 얘기다. 『우리학교 교장은 모든 교내행사에 꼭 학급별 경쟁을 시켜요. 폐품수집ㆍ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 등도 꼭 학급별 실적표를 만들어 교무실 벽에 붙여놓고 저조한 학급 담임을 꾸짖어요. 몇번 싫은 소리를 들은 교사들은 학생들을 다그치게 되고 학생들은 울고불고…. 어떤 때는 학교가 이런 일 하는 곳인가 따지고 싶기도 하지만….』
서울C국교 강모교사(40ㆍ여)는 말끝을 흐린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상하간의 자유스럽고 활발한 의견교환이 될 리 없다. 자연 직원조회 또는 교직원회의는 교장ㆍ교감의 일방적 훈시를 듣는 시간이 되고 만다. 간혹 교사 가운데 한두명이 일어나 입을 열려 하면 주위 주임급 교사들이 황급히 저지한다.
『주임까지 올라간 교사라면 교감ㆍ교장까지 노려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교장이 매기는 근무평정은 승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요. 결국 코를 꿰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이야말로 위ㆍ아래로 치이는 어려운 입장이지요.』
경기도 부천N중 임모 주임교사(45)는 『학교별로 위원회등을 구성해 교사근무평정을 하지 않고 교장에게 맡기는 한 교장의 독주와 관료화를 피할 길이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교육신보가 교원 1천5백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내민주화를 위해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해야 한다」는 전교조의 주장에 88.6%가 찬성을 나타낸 것은 우리의 학교행정 현주소와 관련,주목을 끈다.
『학교행정은 불합리와 비능률의 표본같아요.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너무 많아요. 어쩌면 교사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모를 정도죠.』
서울C국교에 재직중 전교조 활동과 관련,해직된 김주리씨(26ㆍ여)는 그 예로 학급경영록 작성ㆍ결재과정을 들었다. 『학급경영록이란 매주 그 주의 시간표ㆍ예정진도및 예정수업내용을 요약해 적는 16절지 크기의 노트예요. 물론 주임ㆍ교감ㆍ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지요. 나름대로 계획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가 어디 있다고 이런 걸 쓰게 하는지 몰라요. 한 교사가 「새교실」(한국교총이 발행하는 월간교사용 지도서)을 보고 옮겨 적으면 모두 그것을 베껴 제출하지요.』
이밖에도 특별활동일지ㆍ주번일지ㆍ학생개인상담록ㆍ화기관리 점검부 등 별의미없이 그저 「하라고 하니까」 작성ㆍ결재받는 서류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학교행정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상급교육행정기관으로부터 지나칠 만큼 많은 지시와 간섭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지시사항중 학교형편상 수행이 어렵더라도 형식적이나마 하는 체 흉내라도 내야 보고서는 물론이고 추후 감사에 대비한 기록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선학교가 2,3년마다 받아야 하는 학사감사의 경우 감사팀이 교위나 교육청(구청)의 일반직 감사계 직원으로만 편성돼 있어 전문직인 교사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진다. 일반직이 전문직의 학사감사를 한다는 자체가 잘못된 교육행정의 단면이다.
서울J고 김모교사(32)는 『교장이 외부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통에도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면 학교행정이 「안으로는 철옹성,밖으로는 모래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학습지원ㆍ공개행정ㆍ교내 각종 위원회의 활성화가 멀기만 한 학교행정. 교사들의 의견이 폭넓게 수렴되지 못하는 교육활동은 이미 정상적인 생명력을 잃은지 오래다. 전문직 종사자인 교사들에게 자율성과 재량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동참여의 기회가 좁기만한 현실에서 민주적 학교경영은 구호에 머물뿐이다.<김동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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