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 추적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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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구의동에 있는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감사원 관계자가 들이닥쳤다. 서울 흥사단이 감사를 청구한 경품용 상품권 인증과 관련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게임산업개발원은 이미 관련 자료를 검찰에 몽땅 내준 상태였다. 전날 동부지검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나왔던 것이다. 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는 "이틀 연속으로 검찰과 감사원에서 찾아오니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서울 흥사단이 감사를 청구한 것은 그해 5월 26일. 5개월이 지난 10월 13일이 돼서야 감사원은 감사 착수를 결정했고 그로부터 한 달여 뒤 현장 방문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 하루 차이로 자료 확보에 실패한 셈이다. 서울 흥사단 오광진 부장은 "감사원이 늑장 대응을 한 게 문제다. 청구 직후 감사에 나섰다면 지금 같이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용 오락 '바다이야기'와 경품용 상품권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는 이같이 '시기적인 간발의 차'가 유독 눈에 띈다. 관련자들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상한 우연'이란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다이야기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던 당시도 시점이 묘하게 꼬였다. 영등위는 2004년 10월 9일 게임 등급분류기준 세부개정안을 마련해 국무조정실에 규제 심사를 요청했다. 성인오락실용 게임들의 사행성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반영해 심의 규정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은 10월 29일 영등위의 요청을 반려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모든 규제는 법률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규제 강화 개정안은 2개월 뒤인 12월 31일 문화부에서 통과됐다. 그때부터 사행성 게임물에 대한 경품제공 제한이 실제로 엄격해졌다. 문제는 바다이야기 게임이 그 사흘 전 영등위 심의를 통과한 것이다. 바다이야기는 12월 7일 '버전 1'이 첫 허가를 받았으며 '버전 1.1'은 12월 28일 심의를 통과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영등위 심의와 문화부 규제 개정은 별개로 진행됐기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순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은 23일 영등위를 방문한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2004년 말 바다이야기의 영등위 심의 통과에 대한 질의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 ㈜삼미와 '이해찬 골프'=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을 신청한 ㈜삼미의 주주들이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실사(3월 2일)를 하루 앞두고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 골프를 친 일도 있었다. 삼미 박원양 회장, 넥센타이어 강병중 회장, 세운철강 신정택 회장 등 이른바 '3.1절 골프' 멤버들이다. 당사자들은 "업무와 무관한 친목 차원"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2주 뒤 ㈜삼미가 상품권 발행업체로 지정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바다이야기 판매회사인 지코프라임이 우회상장 관련 규정 강화(6월 26일)를 한 달여 앞둔 5월 23일 우전시스텍과 주식교환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을 한 사실 또한 주목받고 있다. 지코프라임이 인수한 회사가 하필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씨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라는 점도 공교롭다.

◆ 단속 발표 사흘 뒤 퇴사=23일 한나라당의 영등위 방문에서는 2004년 12월 바다이야기 심의 등급 결정 당시 담당 간부가 7월 7일자로 퇴사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경순 영등위원장은 "다른 일을 찾고자 한다며 자원해 사임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사행성 성인오락실 단속 방침을 발표한 것은 7월 4일이다. 그러나 해당 간부는 "개인사정으로 퇴사했을 뿐 바다이야기 심의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현재는 실직 상태"라고 밝혔다.

강주안.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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