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극약도 안 듣는 다면...|손장환<경제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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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슨 일이든 갈 데까지 가고 나면 더이상 갈 데가 없는 법이다.
정부의 12·12 증시 부양책을 놓고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정부의 조치에 흡족해 하는 쪽이든, 우려를 표명하는 쪽이든 한가지 일치하는 것은 이번 조치가 갈 데까지 간 마지막 카드의 성격이란 것이다.
중앙은행을 동원한 자금지원을 약속하면서「무제한」이란 어휘를 쓴 것도 그렇고, 또 시가발행 할인율은 정부가 누차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절대 손 안댄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 오던 부분이기 때문에 할인 폭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반신반의하던 투자자들조차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이전에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과연 이 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의문이다.
물론 이전의 처방보다는 훨씬 강도가 센 고단위 처방이기 때문에 전보다 약효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경제안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증시만 정상화된다는 것은 무리한 예측이고 오히려 웬만한 조치에도 끄떡 않는 「면역성」만 키워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에서는 한은이 2조∼3조원 정도의 돈만 풀면 증시가 안정될 것이란 예상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증시에서 손을 빼려고 생각했던 투자자들이 정부의 강력한 증시부양 의지를 보고 그대로 눌러앉아 있거나 새로운 매수세력으로 돌아서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중앙은행까지 동원한 것도 실질적인 무제한 지원이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효과를 노리고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고자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9개월 동안 혼이 났던 투자자들이 정부에서 대주는「뒷돈」덕분으로 본전만 건지고 손을 빼버릴 가능성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그때 가면 정부는 정말 갈 데가 없어지게 된다.
증시의 자율성이니, 건전 증시의 육성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차라리「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갈 데까지 가고도 또 몰린다면 거기엔 그야말로 우리 경제의「벼랑」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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