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17명 한국 땅 찾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 중인 국외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대형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 와 보니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우리 할아버지.아버지의 꿈이 확실히 이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독립유공자 최이붕 선생의 아들 최다닐.69)

러시아.카자흐스탄.중국.캐나다 등지에서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 17명이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14일 이들은 국립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독립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 1908년 정미의병 당시 '서울 진공 작전'을 주도하다 일본군에 체포돼 51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된 허위 선생의 손자인 허프로코피(72.모스크바 거주)는 "지금이라도 할아버지의 넋을 달래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감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다도(茶道)와 한복 입기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서울 시내 호텔로 돌아온 이들은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한국의 발전상에 놀라움을 표했다.

1908년 연해주에서 동의회를 조직해 의병활동을 지원한 뒤 임시정부 재무총장을 지낸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 최세르게이(29)는 "할아버지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너는 한국 사람이다'고 가르치셨는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내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며 "가족을 데리고 꼭 한국에 다시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빅토르(58.황경섭 선생의 손자)는 "카자흐스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아름답고 현대적 건물들을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한국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고 했다. 김디나 이바노브나(77.김경천 선생의 딸)는 "고려인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의 나라에 와 핏줄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며 "한국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독립투사의 자녀로 이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고초를 다시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는 이들도 있었다. 최다닐은 "아버지는 1920년 함북 회령에서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가는 조선은행 현금을 탈취해 무기를 구입한 뒤 북로군정서에 제공했었다"며 "한국의 모습을 보니 밥을 굶어가며 자식들 교육에 애쓴 부모님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들 중 일부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시신조차 아직 찾지 못해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고국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하루빨리 통일이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다닐은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조상들은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황빅토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통일을 위해 좀 더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15일 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뒤 천안시 독립기념관을 관람할 계획이다. 이어 경주.민속촌 관광, 울산 현대자동차 견학, 남대문시장 관광 등을 마치고 19일 출국한다. 국가보훈처는 95년부터 매년 광복절에 즈음해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하고 있다.

김성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