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부패로 자신들 배만 채우는 정권 응징" 부시 '도둑정치와의 전쟁'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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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사진) 미국 대통령은 10일 새로운 세계전략으로 '도둑정치(kleptocracy)'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독재와 부패로 한 나라의 국부를 멋대로 주무르며 독재자와 하수인의 배만 채우는 정권을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말로 이른바 '불량국가'들과 대결해 온 부시 행정부가 '도둑정치'근절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외교정책의 핵인 '민주주의 확산'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도둑정치는 민주 발전의 장애물이고, 국민의 장래를 훔치는 것"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성명이 그걸 뒷받침한다. 특히 미 국무부는 김정일 북한 정권이 '도둑정치'에 해당한다고 밝혀 미국의 대북 압박 강도는 한층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성명에서 "우리의 목적은 모든 형태의 고위층 부패를 제거하고, 썩은 관리들이 국민에 대한 사기와 도둑질로 얻은 이득을 숨기기 위해 국제 금융 시스템을 이용하는 걸 차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달 러시아에서 열린 G8(서방선진 7개국+러시아) 회의에서 합의된 '부패 근절을 위한 법.금융정책의 협력'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도둑정치'를 뿌리뽑겠다고 하는 것은 부패한 독재자가 나랏돈을 독재 강화, 대량살상무기 개발, 테러 등에 쓰는 걸 막겠다는 뜻이다.

그런 구상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조셋 샤이너 국무부 차관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북한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우려의 대상이고, 이 점(도둑정치)에서도 핵심"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 체제에 대해 "모든 수준의 부패가 있는 거대한 부패(grand corruption) 덩어리"라고 지적했다. "고위층의 부패가 정부 전반에 확산돼 국가 발전에 쓰여야 할 핵심 예산(core fund)이 불법 목적에 쓰이고 있다"는 사례로 북한을 꼽기도 했다.

샤이너 차관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통치하는 벨로루시도 거론했다. 친 러시아 성향인 루카셴코는 3월 대선에서 3선 대통령이 됐으나 미국은 "공포 분위기에서 선거가 치러진 만큼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루카셴코와 김정일의 통치자금에 대해선 미국이 국제사회의 협력을 받아 강력히 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샤이너 차관은 "앞으로 '도둑 관리들'을 찾아내 처벌하고, 그들이 국민에게서 훔친 돈을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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